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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RENT

another sky 어나더 스카이 170113 야마모토 코지 in 뉴욕

by 캇짱 2017. 1. 30.


코지군의 렌트에 대한 마음은 너무 커서 일개 팬인 나는 그 전부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다만 그동안의 인터뷰에서 내비친 말들로 헤아릴 뿐이다.

특히 방송에서는 남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서 속 깊은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 만큼

렌트에 대해 이 정도로 심도 있게 다룬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전부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둔 말들이 많이 있겠지. 


1998년『RENT』는 아카사카 BLITZ에서 초연 개막.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첫 대사를 뱉은 순간,

이상한 감각에 휩싸였어. 온몸이 떠오르고 시공을 뛰어넘었어. 지금까지 체험한 적 없는 감각.

혈액이 역류하는 것과도 비슷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 그 순간, 내가 연기한다는 레벨을 무언가가 꿰뚫고 나갔어.

이『RENT』로 지금까지의「연기한다」라는 작업이「살아간다」라는 작업으로 바뀌었어.


긴자백점 2005년 7월호 야마모토 코지 에세이 / 전문은 이쪽

뭔가  최근...『RENT』라는 작품이 제 안에서 뛰어넘지 않으면 안되는 벽 같은 존재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해요.


→ 억지로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네요, 8년 전에 배우로서의 자각을 싹트게 해 준『RENT』가 지금 나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니, 그렇다고 생각해. 단, 안소니처럼 "『RENT』는 나의 피다." 라는 의식은 변하지 않아.

이러한 심경이 된 것도 분명 작자(作者)인 조나단 라슨이 뭔가를 나에게 안겨주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레프리크 2006년 9월호 야마모토 코지 인터뷰 / 전문은 이쪽


인생의 전환기가 된 작품이고 뉴욕으로 날아가서 3개월 있다온 건 코지팬에게는 유명한 이야기지만

(당시 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훌쩍 떠나버려서 팬들은 안달복달 했다고) 

여기서 켄상의 이야기까지 듣게될 줄은 몰랐네.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아진 걸까.. 


코지군과 켄상은 98년 일본 렌트 초연에서 만나 (당시 켄상은 앙상블)

그의 동생 다이군과 함께 모두 같은 B형으로 의기투합해서 음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귀여운 노래도 만들었습니다. → 이쪽


또한 내가 기억하는 켄상은 코지의 생일엔 죽을 수 없다고 마지막까지 버텨주어 다음 날 천국으로 떠난 사람이다.

팬들이 걱정하니까 자기는 괜찮다고 구태여 글을 남겨줬던 코지군과 마찬가지로 상냥한 사람..


1일 밤 제가 사랑하는 켄쨩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31일 낮, 그러니까 제 생일이 고비였습니다만

혼수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켄쨩은 1일까지 힘을 내어 제 생일을 피했습니다.

이건 분명 코지의 생일에는 죽을 수 없다고 하는, 켄쨩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켄쨩과 만나 11년, 많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노래하고, 때로는 엇갈리면서

그래도 누구에게도 깨지지 않는 깨어질 리 없는 인연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켄쨩과 알게된 것으로 둘도 없는 또 한 사람 다이군과도 만날 수 있었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와 다이군은 매우 긍정적이에요!

세 사람의 음악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겁니다!

오늘까지 걱정해 준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켄쨩, 정말 많은 사랑을 주어서 고마워!

켄쨩의 마음은 다이군과 내가 계속 전해갈거야!


2008. 11. 05 

- 야마모토 코지 -


그렇게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고 코지군도 30대가 되어 렌트에 대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현저히 줄었지만

어느 날 문득 꺼낸 이야기는 또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작품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도 안타까워. 


작품과의 만남을 소중히 하는 배우혼을 가졌기 때문이야말로, 깊은 실의를 맛보기도 했다.


다시 제가 진심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작품이 다른 곳에 팔려버려서...

관계자가 배신을 한 건 아니지만, 제가 단지 배우일 뿐이라고 깨달았어요. 한 명의 배우 이상의 것을 바라게 되어서.

사랑해마지 않는 작품이 있으면 그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아픔이 있어. 괴로워도 저는 그 길을 택할 겁니다. 

다시 그 앞에, 제 마음을 움직여 줄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활동의 원동력이네요.


주간문춘 2010년 4월호 야마모토 코지 인터뷰 


이번 어나더 스카이에서도 "마침내 또 할 수 있었는데 그가 떠나버렸다"고 말하는 거 보면

아마도 코지군이 렌트 연출을 맡아 상연하려고 했든지 출연 이야기가 오갔던 건 아닐까 추측된다.

코지군이 출연한 98~99년 이후에 일본에 렌트가 상연된 게 토호판 2008년인데

그때 코지군을 중심으로 켄상과 함께 렌트 출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켄상의 죽음과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 사이 판권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넘어가버린 건 아닌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이 시기에 코지군이 렌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던 뭔가 쓰라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2년 (35살에 세상을 떠난 조나단 라슨을 기념한) 야마모토 코지 35주년 기념 라이브에서

비워뒀던 켄상의 마이크는 참 애틋했지. 


마지막은 SEASONS OF LOVE. 스탠드 마이크를 늘어놓고, RENT 캐스트가 일렬로 서서 노래합니다만

1개의 마이크 앞은 사람이 서있지 않습니다 (마치 엔젤이 있던 장소가 비어 있는 것처럼.) 

마지막에 야마모토 상이 오늘 등장한 캐스트의 이름을 우측에서부터 순서대로 소개했는데

비어있는 마이크의 차례에서는「켄쨩」이라고.


맞아, RENT 초연에 나왔던, 지금은 죽은 유카라 켄상도 거기서 함께 노래했었죠.

조나단도 유카라상도 지금 육체는 여기에 없지만 모두를 지지해 주고 있구나... 

그리고 그 점을 알고 있는 야마모토 상도 매우 멋지구나.. 생각했습니다.


야마모토 코지 35주년 라이브 후기. 2012년 1월 25일 (이날은 RENT의 원작자 조나단 라슨이 35세로 죽은 날)


2014년 켄상의 7주기에 올라온 글 → 이쪽

다음 해, 코지군과 라슨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던 또 한 사람 요시카와 상의 죽음까지 → 이쪽


자신이 연기한 마크 역이 그런 것처럼 친구들은 떠나고 남겨진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코지군에겐 여전히 "내"가 아니라 "우리"가 했던 렌트구나. 

방송에서도 계속 "우리가 했던 때는.."이라며 '우리'를 강조하는 게 인상에 남는다.



아아.. 무슨 얼굴을 하고 보는 거야ㅠㅠㅠㅠ


→ 이번 봄, 영화판『RENT』가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보고 나신 감상은 어떠세요.


좋았어요. ...랄까, 저는 보통 사람과는 조금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사실은 ...좋았다든지 조금 아쉽다든지 그런 감정은 그다지 잘 모르겠어요.


→ 그건 너무 가까운 존재라서?


물론『RENT』는 저의, 배우로서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작품이기는 합니다. 

확실히 영화를 보고 있자니『RENT』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전부를 보여주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음, 뭐랄까,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는 느낌이 있네요.


브로드웨이판 출연 이야기를 순수하게 믿고 훌쩍 뉴욕으로 갔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속았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내 연기가 좋았으니까 그렇게 말해준 거라고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순수로 시작해서 순수로 끝나는 순수한 사람. 


갓스펠을 할 때 컴퍼니 동료가 말한 게 생각난다.

야마모토 코지는 천진난만. 순진무구. 하지만 순결하지 않을 듯한 부분이 좋다고. 

또래 중에서 연예계에 누구보다 오래 있었고 분명 못 볼 꼴 안 볼 꼴 다 보고 겪어왔을 텐데도 참으로 무구하다. 

아지랑이 갈림길의 원작자 사에키 선생님도

그는 긴 세월 연예계에서 살아오면서도 손때가 묻지 않고 무구한 정신과 단련된 육체를 유지해왔다고 했지.


RENT의 굴레인 걸까, 작품의 이상(理想)과 나의 이상이 맞지 않는다는 시기가 그 후 10년 이상 있었을까.


ㅡ 그 상태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었나요?


지금도 돌파하지 못했어요. 이제 40세가 되고 돌파하지 못한 채 죽어버리겠지 생각해요.

아마도 이미『RENT』이상(以上)의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고도 생각해. 다만 내 안에서는『RENT』가 소화불량인 채.


Numero Tokyo 2016년 5월호 야마모토 코지 인터뷰 / 전문은 이쪽


이제 연령상 그 역할은 무리라는 걸 떠나서 팬으로서는 코지군이 다시 렌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마 지금 렌트 무대에 오를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코지군이 생각하는 렌트와는 달라져서 어떨까 싶고

코지군이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을 때 느끼께 될 마음도 안타까워서..

이대로 계속 소화불량인 채로 있는 게 어쩌면 가장 덜 다치는 방법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슬프고 아.. 모르겠다. 

바라는 게 있다면 40주년 기념으로 라이브 해주세요. 노래해주세요ㅠㅠㅠㅠ



코지군 그새 영어 발음이 더 좋아졌더라. 언젠가 쉑쉑에 가면 코지군과 같은 메뉴를 주문해야겠다. 

아, 코지군과 햄버거하면 생각나는 일화. 

유학 시절에 문득 더블 치즈 버거를 잔뜩 사서 타임 스퀘어에서 거리 사람들에게 막 나눠줬는데

현지 경찰에게 너 뭐하는 놈이냐고 붙잡혔다고. 사스가 할렘가에 살던 남자야 ㅋㅋㅋ



개인적으로 렌트 이야기가 크게 남긴 했지만 역시나 엔터테이너라서 마술 코너도 흥미진진했다. 

코지군의 마술은 마술 그 자체도 좋지만 이렇게 선보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왔을 기다란 손가락을 보는 게 좋아.

마술하며 그린 엑스 표시를 나중에 닦아주세요 라고, 그 짧은 순간에도 아야미짱을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모습이 티나지 않게 젠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