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PM 5:00
락 오페라 모차르트 루즈 버젼 : 모차르트 - 나카가와 아키노리 / 살리에리 - 야마모토 코지
주연 두 사람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역을 교대로 연기하는 일본 <락 오페라 모차르트>. 야마모토 코지 모차르트가 인디고 버젼, 나카가와 아키노리 모차르트가 루즈 버젼으로 나름의 구별을 두었는데, 이게 더 헷갈려! 배우들도 헷갈리는지 코지군은 타코이즈 버젼이라는 둥 ㅋㅋㅋ 거기서 타코이즈를 떠올리는 게 더 힘들 거 같은데. 여하튼 먼저 본 것이 루즈 버젼이므로 루즈 버젼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다. 보기 전부터 루즈 버젼에 대한 평이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예상대로 좋았다.
루즈 버젼 모차르트 역의 나카가와 아키노리 군. 일명 앗키. (나는 계속 나카가와 군이라고 불렀었는데 커튼콜에서 그 업 된 모습을 보고 나선 앗키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나카가와'군'의 이미지는 절대 아님 ㅋㅋ) 앗키는 가수로 데뷔하였지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모차르트!>의 일본판(토호 제작)에서 주연 '모차르트' 역을 맡아 열연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이 작품으로 뮤지컬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그는 그해의 남우신인상을 거머쥘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나 역시도 앗키하면 <모차르트!>에서의 모습을 떠올릴 만큼 인상에 남아있다. 그런 그가 10년 만에 다시 모차르트 역으로 돌아온다니 화제가 될 수밖에. 사실 <모차르트!> 이후로 앗키의 행보가 썩 좋지만은 않았던 터라 이렇게 큰 무대에서 다시 그를 볼 수 있는 것에 반가워하는 팬들이 많은 듯하다.
한 번 '모차르트' 역을 연기해봤던 것이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이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우려가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군가에게는 득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독에 가까웠다. 그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하면 떠올리는 일반적인 이미지, 아마도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확립되었을 모차르트의 대중적인 이미지(=천진난만한 음악 천재)에 가까웠는데 바로 이 점이 관객들에게 먹혔을 거라 생각된다. 특히 그의 팬 입장이라면 <모차르트!>에서의 그리운 그 모습이었기에 더욱 좋았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 소년 같은 느낌이 장점으로 다가왔고, 차가운 코지 살리에리와의 대비 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그 이미지를 '독'이라고 표현한 것은 앗키가 너무 그 이미지에만 묶여 있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앗키도 나이가 들었는데 10년 전의 이미지 그대로를 연기하려고 했다는 것부터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비주얼로 그 반짝이던 시절을 재현할 수 없는 거야 당연한 거고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10년의 세월 동안 연기 부분에 발전된 무언가를 보고 싶었던 나로서는 응? 연기가 너무 <모차르트!>와 겹치잖아. 게다가 그때보다 반짝임도 부족해! 라는 감상이 나오는 거다. <모차르트!>의 앗키와 지금의 앗키를 비교하면 망설이지 않고 <모차르트!>에서의 앗키가 더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모차르트 역할이라고 해도 <모차르트!>와 <락 오페라 모차르트>는 엄연히 다른 작품, 당연히 다른 성질의 연기가 요구된다고 생각하는데 앗키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만 뚝 떼어 <락 오페라 모차르트>에 집어넣은 것 같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원 패턴 연기밖에 할 수 없는 연기자로서의 한계를 보았고, 여기선 그의 연기력보다는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에 그를 섭외한 캐스팅 담당자를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 들리는대로 받아적은 거라 정확한 가사는 아닙니다.
모차르트 사실이야? 자네가 내 살롱에서 연주하는 걸 콜로레도 대주교가 금지했다고?
난넬 : 불쌍한 내 동생! 참아야 해!
콜로레도 : 나만을 위해 연주해!
모차르트 : 이제 질렸어!
주교와 친애하는 왕이시여, 마지막으로 내 모습을 잘 봐두라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오늘 밤 사직한다!
자유... 알겠어? 나는 자유다, 자유의 몸이라고!!
꿈을 지배하는 자
누구한테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 안 해
자신만을 믿고 가자
하찮은 녀석들이 방해한다면
닥치게 해줄거야 더는 망설이지 않아
연결된 굴레를 끊어버리자
길을 열어라! 내가 여기 있으니까
지금 맹세해 자유를 위해
길을 열어라! 무엇도 두렵지 않아
꿈을 찾아 저 하늘로 날아오르자
마지막까지 해주지 라고 정했으니까
계속 달려갈 뿐 그걸로 좋아
정열은 사라지지 않아 언제까지나
꿈을 지배하는 자만이 지금 손에 넣을 수 있는 이 세계를
길을 열어라! 내가 여기 있으니까
지금 맹세해 모든 걸 손에 넣겠다고
노래는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다. 생각 이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그가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알고 보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그의 노래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특히 '내 가슴에 타투'나 '꿈을 지배하는 자' 같은 밝은 넘버가 매우 잘 어울렸다. 다만, 노래에 애드리브를 넣는 경향이 있는데 적당히 흥에 겨운 모습은 좋지만 가끔 지나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모차르트의 감성보다 튀어버리는 '가수' 앗키로서의 모습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살리에리 역의 코지군에 대해선, 무슨 설명이 필요하리. 나이와 연예계 경력이 같은 무시무시한 이력의 소유자인데다 무대 활동은 무려 10세부터 레미제라블의 가브로슈 역으로 시작한 베테랑 배우이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건 그를 TV 배우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어? 저 배우 드라마에서 봤는데 뮤지컬도 해?' 라는 게 일반 대중의 인식이었어.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배우인 줄 몰랐다는 의견이 생각 외로 많더라. 나에게 그는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배우이고, 배우 본인도 TV 활동은 무대로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하나의 방편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데, 역시 일반 대중들에겐 TV 드라마에서의 이미지가 큰 가 보다. 그것은 그가 무대 못지않게 TV 드라마에서도 기억에 남을 연기를 보여주고 훌륭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겠고. 또한, 토호나 시키 등의 대형 극단에 소속되지 않고 메이져 뮤지컬 노선이 아닌 마이너한 작품(렌트, 틱틱붐,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헤드윅 등은 전부 내 취향의 작품이지만 대중적이진 않다)에 연이어 출연하며 독자적인 무대 배우의 길을 걸어온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
따라서 이번 <락 오페라 모차르트>는 2003년 레미제라블의 마리우스 역 이후 오랜만에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 출연이 되는데, 이번 무대를 계기로 야마모토 코지를 재발견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 대중 뿐만 아니라 무대 팬들 사이에서도 이번 무대로 코지군을 처음 본 사람들이 제법 있는 듯한데, 아니 이런 배우가 지금껏 어디 숨어있었냐!! 이런 배우를 제국(극장)에 안 세우고 뭐 하는 거냐!! 라는 식의 반응이 재미있다 ㅋㅋ 지킬 앤 하이드에 섭외 좀 해달라며. 10년 가까이 그를 지켜봐 온 나로서는 이런 반응이 기분 좋으면서도 의아할 따름이다. 이 옵화 원래 끝내줬다고!
그러한 야마모토 코지의 매력이 넘쳐흐르는 이번 무대, 살리에리가 메인이 되는 2막까지 갈 것도 없다. 나는 그가 무대 위에 처음 등장해서 나레이션 할 때부터 이미 발렸어! 새삼 느낀 건 역시 이 배우는 고전적인 의상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워낙 비율이 좋아서 현대 수트도 잘 어울리지만 중세 복식은 정말 할 말을 잃게 하는 실루엣이다. 듣기로는 이 역할을 위해 2kg 감량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미묘한 차이도 신경 쓰다니 역시 배우는 다르구나. 그의 역할에 임하는 진지한 태도에 또 한 번 놀랐다.
일본판에서 살리에리는 스토리텔러로서 모차르트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등장하는데, 특히 인상에 남았던 것은 모차르트 어머니의 죽음씬이었다. 가면을 쓴 검은 코트의 사내가 괴로워하는 모차르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그는 분명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서 있는 모습만 봐도 아, 코지군이다! 라고 알아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세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곧고 올바른 자세, 이미 거기서부터 기품있는 살리에리의 면모가 느껴졌다. 가면을 벗으니 역시 코지군이었고 ㅋㅋ 이 장면은 괴로워하는 모차르트에게 집중해야 하는데도 자꾸만 시선이 살리에리에게로 향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만큼 존재감이 굉장하다. 퇴장하면서 코트 자락을 펄럭하는데 그의 경고를 듣는 모차르트와 다른 의미로 심장이 철렁했다. 이 사람이 누굴 죽이려고. 나 아직 2막도 못 봤다고ㅠㅠㅠㅠㅠㅠ
1막이 순전히 비주얼 찬양용이었다면;; 대망의 2막을 맞이하여, 드디어 코지군이 연기하는 살리에리의 캐릭터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살리에리를 1막에 미리 등장시킨 건 어쩌면 저 비주얼에 미리 적응하라는 깊은 뜻이 있었는지도 몰라. 무턱대고 2막에 저 비주얼에 연기와 노래까지 더해진 3단 콤보를 맞닥뜨린다면 모차르트가 죽건 말건 살리에리만 핥다 왔을지도.
▲ 뒤에 보이는 게 '운명' 양 옆에는 '고뇌' 지만 어디로 보나 살리에리님과 아이들.
코지군의 살리에리는 흔히 살리에리 하면 떠올리는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찌질대는 캐릭터가 아니라, 음악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먼저 알아보고 괴로워하는 연기가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그 자부심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접하고 조금씩 무너져 가는데.. 저 도도하고 고귀하고 지적인 분이 무너져 가니까 좋은 거예요ㅠㅠ
※ 이쪽에서 들으세요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아리아 10
+ 고통이야말로 진실
마치 이 가슴을 나이프로 후비듯
고통이 온몸을 뜨겁게 떨리게 해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이 목마름은
아찔해질 정도의 빛을 쬐어
(고통만이 노래해 진실을)
(피를 흘릴 때 발견할 수 있는 진짜 기쁨)
(고통만이) 나를 (비추는 진실을) 몰아세워
(흘러 떨어지는 피가 말을 건다 진짜 너에게)
어디로 가면 좋은 건가
어디라면 발견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지낼 수 있는 곳
이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건가
끝없이 계속되는 광기의 세계
(고통만이 고하네 진실을)
(꿈 같은 게 아냐 넌 포기하는 게 좋아)
(고통만이) 아무것도 (비웃는 진실을) 들리지 않아
(울부짖어도 삼켜지는 너의) 외침은
아~아아아아~
(고통만이 노래해 진실을)
(피를 흘릴 때 발견할 수 있는 진짜 기쁨)
(고통만이) 나를 (비추는 진실을) 몰아세워
(흘러 떨어지는 피가 말을 건다)
진짜 나에게
특히 '고통이야말로 진실' 전주 부분의 아리아에 서서히 변화하는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그전까지 쿨한 무표정이었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처음으로 표정에 변화를 준다. 이 장면은 배경이 전부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고 살리에리에겐 어떠한 대사나 행동, 장치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가만히 서 있는 코지군의 표정 연기 하나만 믿고 가는 장면인데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굉장하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클라이맥스로 치달을수록 그 음악의 세계를 이해하면서 빠져드는 경악, 감탄, 전율, 환희, 동경, 좌절, 초조, 절망, 질투가 그의 얼굴에 공존한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곳에는 모차르트의 음악과 그것을 듣고 있는 살리에리와 그의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내가 있었다. 한순간도 빈틈이 없이 꽉 들어찬 무대, 그것을 코지 살리에리가 만들어내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만 것에 괴로워하면서도 노래가 끝나니 싹 표정을 감추고 그대로 진행하라며 모차르트를 북돋아 주는 살리에리. 코지 살리에리는 끝까지 신경질적이 되는 일이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질투심의 폭발 같은 격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데, 그 피를 토하는 심정을 안으로 삼키며 서서히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이 절절히 와 닿는다. 살리에리는 주인공 모차르트를 잡아먹을 정도로 강렬한 캐릭터이고 연기하는 방식에 따라 충분히 겉으로 감정을 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코지군의 연기는 반대였다. 오히려 그 격한 감정을 최대한 눌러담으며 절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살리에리의 뜨거운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확실히 전달해준다는 점이 훌륭했다. 역시 내공이 다르구나.
원작에서는 '살인의 심포니'에서 나오는 살리에리의 자해씬이 일본판에서는 다음 넘버인 '승리의 대상'에서 연출되는데, 이 또한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모차르트를 실각시키고 가장 기뻐해야 할 승리의 순간에 나이프로 손목을 긋는 살리에리의 감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애달프다. 살리에리 넘버답지 않게 장조의 발랄한 분위기지만 정반대의 감정으로 노래한다는 게 흥미롭다. 코지군이 또 칼을 얼마나 예술적으로 잘 다루는지 마치 하나의 춤사위처럼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춤하니 생각나는데, 고뇌 댄서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살리에리가 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거야. 아아, 젠장. 살리에리가 춤도 잘 춰ㅠㅠㅠㅠ
코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죽고 나서도 계속 괴로워했던 거 같다. 그래서 2막의 끝 장면과 이어지는 1막의 첫 장면에 등장하여 감정이 폭발하는 것도 좋았다. 그 첫 장면으로 시선을 확 사로잡고 시작하는 건 노림수겠지? (이쪽 참고)
연기도 연기지만 중저음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캐릭터와 매우 잘 어울려서 살리에리 노래가 몇 없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모차르트와 함께하는 넘버가 하나쯤 더 있어도 좋을 듯한데.. 그러면 누구 말마따나 정말 <락 오페라 살리에리>가 되는 건가 ;ㅁ;
인상적이었던 알로이지아 역의 아카네 씨. 비주얼도 노래도 연기도 좋았다. 콘스탄체와 함께 등장하면 자꾸 시선이 알로이지아에게 향하더라만 콘스탄체가 아닌 알로이지아에게 첫눈에 반한 모차르트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다. 워낙 첫 등장이 임팩트 있기도 하고, 상대역이 누구냐에 따라서 연기 노선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웠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노래할 때는 카리스마 누님이던데 다카라즈카 남역 출신이구나. 다카라즈카 출신이 노래를 못한다는 편견을 조금 없애주었다.
에케비라는 현역 아이돌 콘스탄체 역의 배우도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고 딱 잘라 말하기엔 부족하고 나쁘다고 말하기엔 이런 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로서는 괜찮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이 역할은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 같은 아우라는 없어서 누구라도 그녀를 대신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해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연기에 좀 더 깊이가 있었으면 했지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거겠지.
제작발표 때부터 생각했지만 아이돌답지 않은 외모가 마음에 든다. 에케비에 대해 잘 몰라서 이 아가씨가 그 그룹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확 들어오는 인상은 아니다. '아이돌'하면 작고 귀엽고 반짝반짝해서 가만히 있어도 시선이 집중되는데 이 아가씨에겐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그게 아이돌로서는 단점일 수도 있겠고 그룹 내에서는 좀 묻히지 않을까도 싶지만, 만약 배우를 지향하고 있다면 충분히 장점으로 작용할 거라 생각된다. 다만 커튼콜 때마다 소속 그룹명을 입에 담는 건 전혀 득 될 게 없으니 자제하는 게 좋지 않나 싶고. 콘스탄체를 연기한 배우로 보고 있다가도 에케비라고 들을 때마다 아, 아이돌이지 라고 급현실로 돌아와서 그래.
이 아이돌보다도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졌던 건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역의 다카하시 죠지 씨다. 본업은 가수이고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하필 이런 대작에, 그것도 첫 문을 여는 넘버 담당이라니 부담감이 상당했을 듯하다. 의외로 대사 톤이라든가 목소리가 역할에 맞아서 연기는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학예회 수준의 연기였으나 등장씬이 많지 않아 참아줄 수 있는 수준) 노래하니까 진짜 깬다;;;; 가수 창법인데, 그것도 무난한 가수 느낌이 아니라 자기 느낌이 확고한 가수 창법이라서 첫 소절 듣자마자 읭? 했다. 모차르트 교향곡으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아버님이 입을 열자마자 다 망쳐놓았다. 아 그런데 이 분, 무려 솔로 넘버도 있어ㅠㅠㅠㅠ
본업이 가수니까 일반적인 노래를 부르면 괜찮은 노래 실력인 걸까? 그조차도 의문이 든다. 딱히 뮤지컬이라서 별로가 아니라 그냥 노래를 못하시는 거 아닌가 하는;; 무엇보다 발음이 굉장히 거슬린다. 오죽하면 외국인 연출가가 발음을 지적하고 나섰을까. 외국인한테 발음 지적받는 게 싫어서 열심히 연습했다는데, 한 게 그거면 할 말이 없네요. 이상하게 혀를 굴려서 외국인이 일본어를 하는 듯한 발음이었다. 이 발음 때문에 노래가 더 못하게 들렸던 거 같기도 하고. 저 노래를 듣고 감정 잡고 연기하는 코지군이나 앗키가 진심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아버님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는 난넬 역의 배우 키쿠치 미카는 의외의 복병이었다. 노래하는 걸 듣고 이 배우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망원경을 들었을 정도다. 하필 첫 넘버를 아버님과 같이 노래해서 상대적 우위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솔로 넘버도 충분히 잘 소화했으니 진짜로 잘하는 거 맞다. 순수한 목소리와 일부러 꾸며대지 않아도 어딘가 슬픈 느낌이 난넬 역과 매우 잘 어울렸다. 아버지가 위독하신 소식을 듣고도 찾아뵙지 못하는 모차르트의 괴로움을 이어받은 그녀의 노래, 그 슬픔의 아우라가 무대 전체를 휘감는 느낌이 좋았다. 여배우 중에선 난넬이 제일 좋았을지도. 이 작품에선 알로이지아나 콘스탄체에 비해 난넬이 눈에 띄는 배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일 기억에 남는다. 찾아보니 성우로도 활동하고 레미제라블의 코제트 역도 했었구나. 그녀가 노래하는 코제트 넘버도 한번 들어보고 싶네.
그 외에 영화배우로 더욱 친숙한 츠루미 신고 씨가 술집 주인과 운명이라는 극과 극의 역을 넘나들며 고생하셨고, 로젠베르크 백작은 살리에리 흉내를 그럴 듯하게 내서 웃음 포인트를 잘 살려주었다. 살리에리가 더블 캐스트다 보니 두 사람 분을 연구해야 해서 배로 힘들었을 텐데, 정말 특징을 잘 잡아냈더라. 자신을 흉내내는 모습을 보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내는 코지 살리에리와 기분 나쁜 게 얼굴에 다 드러나는 앗키 살리에리의 제각각의 반응도 재미있었다. 베버 가족도 무난하게 좋았고 원작에 비해 비중은 줄었지만 댄서들도 실력파라는 게 느껴졌으며, 작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던 소프라노 가수의 노래는 수준급이었다. 모차르트라느니 살리에리라느니 말하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제일 좋은 건 실제 모차르트의 곡이라는 것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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