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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락오페라 모차르트

일본「락 오페라 모차르트」2013 in 도쿄 (2)

by 캇짱 2013. 2. 24.

일본판 <락 오페라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역할을 두 배우가 교대로 연기한다는 특수성에 더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그리기 위해 대본 수정을 거친 것으로 안다. 사실 이 작품(원작)은 생각만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밀도 있게 주목하진 않아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두 사람의 대결 구도 같은 건 애초에 없다고 보면 된다. 있다고 한다면 살리에리의 모차르트를 향한 일방적인 적개심일까. 작품 전체적으로 보자면 살리에리 역시 알로이지아나 콘스탄체처럼 모차르트의 인생을 스쳐 갔던 수많은 주변 인물 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 의외로 두 사람이 직접 만나는 씬도 적다. 하지만 일본판은 그런 태생적 한계를 적절히 다듬어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빛과 그림자에 빗대고 희대의 라이벌인양 소개한다. <엘리자베트>를 '죽음'에게 사랑받은 여인으로 포장하는 것과 같은 참으로 일본인다운 발상이지만 그것이 먹힌다는 거.. 모차르트를 다룬 또 다른 작품 <모차르트!> 와 이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살리에리'에게 있다고 생각하므로, 그 부분을 훌륭히 캐치하여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제작사의 판단은 영리했다. 나 역시 거기에 낚여서 한 번 볼 거 두 번 보는 거지 않냐늫!!!


그래서 원작과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원작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치 드라마에서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소개하듯 극에서 보여주지 않는 모차르트의 지금까지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일본판에서는 살리에리가 해설자로 등장하여 막을 열게 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소개한다는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해설자가 살리에리가 된 덕분에 조금 추가적인 연출이 붙게 된다. 먼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소개하며 그는 신동이었고 6살에 교향곡을 쓰고 13살에는 처음 오페라를 썼던 천재 소년이라고 하면 뒤에서 듣고 있던 모차르트가 "아냐, 11살이었어!" 라며 말참견을 하는 식이다. (이때, 모차르트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밉다 ㅋㅋ) 하지만 살리에리 역시 훌륭한 음악가로 황제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건 16살이었다고 한다. 그건 모차르트보다 1년이나 빨랐지만 자신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거라 한탄하고.. 허나, 모차르트의 위대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살리에리는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며 막이 오른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의 연출은 원작보다는 일본판이 마음에 들었다. 본격적으로 막이 올라가기 전에 앞으로 그려질 두 사람의 관계를 점쳐볼 수 있고 기대감을 고조시켜 주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일본판)' 라고 외치고 막이 올라가는 것과 '모차르트에게 위기가 찾아왔어요, 콜로레도!(원작)' 라고 외치고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안겨준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모차르트' 니까 그의 이름을 관객들에게 뙇! 새겨주고 시작하는 것은 꽤 좋은 어레인지였다고 생각한다. '아아 신이 보낸 아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라고 문을 여는 또 다른 작품 <모차르트!> 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만, 그것을 살리에리가 소개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1막의 문을 여는 첫 장면이 극의 마지막 모차르트의 죽음씬과 연결된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모차르트는 결국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데, 그 레퀴엠의 완성을 부탁하는 마지막 순간에 살리에리가 있었다. (이때,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레퀴엠 악보를 챙겨가는데 코지군은 잘 숨겨가지만 앗키는 가져(훔쳐?)가는 게 대놓고 보인다 ㅋㅋ) 그제야 첫 장면에서 살리에리가 손에 쥐고 있던 게 다름 아닌 모차르트의 '레퀴엠' 악보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는데, 왜 이 작품의 문을 여는 것이 모차르트의 많은 곡 중 하필 '레퀴엠'이었던 건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더라. 모차르트는 죽음의 그 순간에 '또 만나자' '끝이 아니라 시작' 이라고 했다.


이런 식의 각색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더욱 섬세하게 다루면서, 원작대로라면 1막에는 살리에리가 등장하지 않다 보니 배우의 비중 문제도 고려한 것이 아닐까 한다. 모처럼 주연급 배우를 두 사람 캐스팅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을 1시간 내내 대기실에만 앉혀두는 건 아깝잖아. 하지만 첫 장면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중요한 고비마다 살리에리가 등장해 스토리텔러 역할을 하는 것은 괜한 덧붙임으로 여겨졌다. 아무래도 원작이 스토리보다는 쇼적인 면이 강하고 그저 장면, 장면을 붙여놓은 것 같다 보니,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이음새 역할을 기대했나 본데..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고 배우가 쓸데없이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살리에리가 자주 등장해서 이것저것 말하다 보니 캐릭터의 무게감이 줄어드는 거 같기도 하고. 물론 코지군은 그 정도로 무게감이 줄어들고 어쩌고 할 배우는 아니지만 앗키의 경우는 좀 다르니까요. 앗키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앗키가 잡은 살리에리 캐릭터 노선이 과해서 등장할 때마다 점점 개그 캐릭터 같아져서 그래;; 

그래도 모차르트 어머니의 죽음 때, 살리에리가 사신처럼 등장하는 설정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때, 살리에리는 가면을 쓰고 나와 모차르트에게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한다. 2막에서 레퀴엠을 의뢰하는 역(살리에리 배우가 연기하지만 살리에리는 아님)을 연기할 때도 같은 복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의도된 연출이겠지. 


다만 그렇게 되면 두 사람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운명'이라는 역할과 조금 캐릭터가 겹치는 거 같기도 하다. 이 역할은 '로미오앤줄리엣'에 나오는 '죽음' 과 비슷한 존재라고 어쩐지 이해하였으나, 정작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역할이고 사실 이해하지 않아도 극을 즐기는데 별반 문제가 되진 않는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저거 뭐지?' 였으니까. 캐릭터 이름이 '운명'이라는 것도 커튼콜에서야 알았다. 술집 주인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반전 ㅋㅋ 

외관상 전혀 다르지만 '희극, 비극' 하는 노래를 부르는 걸로 봐서 원작에서의 광대 역을 대체한 캐릭터 같은데.. 광대가 동양의 정서에는 맞지 않으니 '운명'으로 바꾸고 좀 더 의미 부여를 한 거 같다. 분장이 워낙 기괴하여, 모차르트가 '네 가슴에 타투' 같은 밝은 넘버를 부른 다음 뒤에 뙇! 서 있으면 순식간에 극의 분위기가 반전......... 되는 걸 기대했나 본데, 그런 거 치고 존재감이 약한 게 흠이다. '네 가슴에 타투' 의 다음 씬이 어머니의 죽음이기에,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혀줄 존재가 필요했겠지 라고 납득은 했다. 

내가 그를 '죽음' 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은 매 죽음의 순간마다 함께 있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그가 '죽음'이 아니라 '운명'이었던 것은 작품을 전체적으로 돌이켜보니 비로소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죽음'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나 '운명'은 기괴한 인상과 달리 부정적인 이미지인 것만은 아니었다. '희극, 비극' 이라는 광대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렇고 (여기선 광대의 희극적이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이중적 이미지를 떠올려도 좋다) 늘 '운명'과 형제처럼 붙어 다니던 '고뇌' 라는 역할-두 명의 남자 댄서-과의 차별성 면에서도 그렇다.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운명'과 달리 이 '고뇌'는 직접 그들의 삶에 관여하며, 괴롭힌다. 

그러나 내내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고뇌'가 극의 마지막, 모차르트가 승천할 때는 등장하지 않고 이때는 오로지 '운명' 만이 함께 한다. '고뇌'에서 벗어나 승천하는 모차르트를 '운명'이 따뜻하게 지켜보는 이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야, 내내 '저거 뭐지?' 라는 물음표가 떠다니던 관객도 연출 의도를 이해하고 함께 승천하는 기분이다. 상징적인 의미로 보자면 괜찮은 연출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한 번만 보는 관객에게는 바로 와 닿지 않는 불친절한 느낌이구나. 존재감도 약하고. 만약 재연을 하게 된다면 이 역할의 타당성이 느껴지도록 좀 더 다듬어주었으면 한다. 


모차르트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장막이 걷히고 동시에 등장한 세트와 앙상블도 압도적인 파워가 느껴졌다. 



연출가 사이트에 공개된 이번 무대 세트 디자인이다. 가운데 있는 저 비스듬한 무대가 회전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연출하는데 단순해 보여도 적재적소에 이용된다. 암전 한 번 없이 장면 전환을 하는 자연스러운 연결에도 큰 역할을 하며, 특히 무대의 높낮이 차이에 따라서 등장인물의 관계가 더욱 명확하게 전달된다. 가령 콜로레도는 상단에 모차르트는 하단에 있는 것으로 콜로레도의 절대 권력이 한눈에 그려지기도 하고, 모차르트의 경이로운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살리에리는 하단의 무대에서 상단의 모차르트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괴로워하는 살리에리가 '살인의 심포니'를 부르며 회전하다(무대가 회전함) 정상에서 뒤로 넘어가는 장면은 감정의 극대화를 경험하게 한다. '살인의 심포니'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영역(?)인 상단 무대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데, 고뇌(댄서)와 싸우며 정상을 탐하지만 정상에 오른 순간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츠이 루미 씨의 무대 미술도 훌륭하지만 여기선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필립 맥킨리 씨의 연출 능력을 높이 샀다. 그 외에도 커튼이 내려와 반쯤 가리면 베버 가족의 집이 되거나 술집 배경이 되거나

 


결혼식 장면에선 하얀 꽃장식과도 잘 어우러져 저걸 저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구나 볼 때마다 감탄만 했던 기억이 난다. 저 비스듬한 경사면에서 용케 균형을 잡고 발레를 하거나 춤을 추는 배우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저 경사면이 일정한 게 아니라 회전할 때마다 높낮이가 달라지니 때마다 거기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결혼식 장면의 의상 디자인. 완전 이쁨. 그냥 니가 신부해라ㅠㅠ


이번 무대의 의상 담당은 다카라즈카에서 <엘리자베트> 등의 의상을 제작해 온 아리무라 준 씨였다. 프로그램 훑어보다 '다카라즈카'가 보여서 놀랐는데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네요. 근데 모델 기준이 코지군인 거 같아서 앗키가 입었을 땐 이 느낌이 안 나는 게 함정;; 


세련된 무대에 걸맞게 의상도 하나같이 화려하고 예쁘고 (모차르트의 1막 의상은 호불호가 갈리겠다만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에서의 찢어진 청바지처럼 모차르트의 반항심을 드러내는 의도된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보고 있으면 참 눈이 즐겁다. 지금까지 봤던 무대 중 제일 화려했던 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무대의 완성도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해서 오랜만에 눈 호강 좀 했다. 


가만 보면 이번 무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필드를 떠나 한데 뭉친 흔치 않은 경우였던 거 같다. 연출은 브로드웨이에서, 의상은 다카라즈카에서, 캐스트진도 무대 배우만 고집하지 않고, 가수 출신, 아이돌 출신, 다카라즈카 출신, 오페라 가수도 나오고 발레리나에 전문 댄서까지 다양하게 포진해있다. 언뜻 불협화음을 낼 거 같은 그 개성적 인물들이 서로 존중하며 이렇게 훌륭한 하모니를 이뤄낸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막공을 보고 와서 그런가, 일본 <락 오페라 모차르트>팀에 애정이 생겨버린 거 같네. 노래할 때마다 똥을 줬던 아버님도 막공 인사 때 우는 거 보니 짠하더라. 그래도 깔건 깝니다. 캐스트에 대해선 다음 편에 이어서.. 


(3)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