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신문의 미타니 코키 칼럼
대하드라마「사나다마루」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접어들고 있다. 이 이후는 역사상 유명한 사건이 늘어섰지만 각본가로서는 고민되는 부분. 최신 시대고증에 근거한 새로운 해석이 있다면 몰라도 나로서는 익숙한 장면은 별로 그리고 싶지 않다. 심술쟁이라고 생각될지언정 쓰면서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혼노지의 변에서「인간 오십년~」이라고 춤추면서 노래하는 오다 노부나가. 몇번 씩이나 봐온 장면. 그러니까「사나다마루」에서는 나는 구태여 생략했다. 물론 명장면을 기대하는 시청자가 있는 것도 당연해서 그들이 보면 나는 매우 불친절한 각본가가 된다. 이 부분의 조절이 매우 어렵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거쳐 이시다 미츠나리가 처형되기까지의 흐름도 대하드라마에서는 단골. 이번에는 다른 접근으로 가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사나다마루」에서 미츠나리는 중요한 서브 캐릭터. 완전 생략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그려지지 않은 건 없는지 찾아보았다.
알맞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31화에 방송된「도쿠가와 이에야스 습격 미수 사건」
사건이 일어난 것은 1599년 1월 21일. 히데요시의 죽음이 공표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실은 나도 몰랐다. 역사 연구가에게는 유명한 사건이겠지만 드라마에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미츠나리를 카토 키요마사 등 일곱 장수가 습격한 건이 더 유명하고 양쪽 다 그리면 조금 장황해진다. 한쪽은 넘겨온 것이겠지. 하지만 이번에 조사해보고 알았다. 이건 이것대로 후시미를 뒤흔든 대사건인 것이다. 여하튼 도쿠가와파와 반(反)도쿠가와파가 후시미의 한복판에서 무력충돌했던 미니「세키가하라 전투」이니까.
새삼 최신 대하를 다시 보면「천지인」에서는 이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1화 전체를 사용해 그린 것은 대하사상 처음이 아닌가.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역사적 사실을 기반해 독자적인 해석도 넣으면서 드라마화하는 기쁨. 게다가 진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미츠나리의 아군이 되는 오타니 교부나 사나다 마사유키가 왜인지 이때는 도쿠가와 편에 붙어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업은 매우 즐거웠다. 그야말로 대하드라마 각본을 쓰는 묘미가 여기에 있다. 연출은 젊은 도이 쇼헤이 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기가 팽팽하고 늘어지는 순간도 없이 매우 스릴있는 드라마로 만들어주었다.
마이너한 사건이므로 내가 역사적 사실을 날조했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도 많았던 것 같다. 그게 조금 아쉬워. 매번 있는 일이지만 나의 "희극작가"라는 이미지가 나쁜 영향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 앞으로 세키가하라 전투가 드라마화될 때 이 사건이 등장할 것인지. 각본가 여러분, 나의 창작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쓰셔도 괜찮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