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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TTB

뮤지컬 틱틱붐 2012 in 도쿄 (2)

by 캇짱 2013. 12. 10.
# 2012. 10. 08 에 임시 저장해 둔 글을 정리해서 올린다. 

(1)에서 이어집니다.

5년 전, 바로 이 작품 안에서 서른 살을 맞이했던 야마모토 코지-실제로 공연 중에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하여 관객의 축하를 받았다-는 씨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존이었다. 그것은 세상을 다 버려도 버릴 수 없었던 '꿈'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던 아픔과 그의 눈에 보이는 삐뚤어진 세상이 절절히 와닿았기에 나는 그것이 이상(理想)의 존이라고 생각했다. '정답에 가까운'이라고까지 평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그는 착한 사람일 터였다. 세상은 아름답다는 걸 믿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세상이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뿐이다.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 걸까? 나쁜 세상, 삐뚤어진 세상일까? 이 질문에 5년 전 그가 "Yes" 라고 답했다면 지금의 그는 "........" 으로 대응한다. 그는 세상을 똑바로 보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삐뚤게 보지도 않는다. 대신 렌즈 뒤에 숨어버리는 걸 택했다. 뿌연 렌즈에 비치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인지 잔인한 세상인지 알 수 없다.
 
지금에 와서 말이지만, 5년 전 그때 그 연기를 '정답'이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구태여 '정답에 가까운' 이라고 한 것은 정답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캐릭터가 달라질 줄은 생각도 못해서.. 그건 그거대로 좋았는데 이건 이거대로 좋다. 코지군의 연기에는 언제나 설득당하고 만다. 

친구는 말한다.「(양복주머니의 행커치프를 건네며) 어이, 존! 렌즈 좀 닦아」안부 전화를 끊기 전에 아버지도 당부한다.「잘 때는 안경을 벗고자렴」존은 대답한다.「그래선 꿈을 꿀 수 없어(=볼 수 없어)」 

위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무대에서 안경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이것은 원작에는 없고, 일본에서도 이번 코지군 연출판에서만 새롭게 추가된 설정인데 대사나 가사도 그에 맞춰 조금씩 수정되었다. 마이클의 첫 등장 대사인「어이, 존! 렌즈 좀 닦아」는 원작에선「Jon, you've got to chill.(존, 진정해)」한국판에선「쟈니, 그냥 받아들여」이다. 일본판도 2006년 버전에선「존, 릴랙스」였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전과는 다른 연출 의도가 드러난다.  

처음 존이 안경을 쓰고 무대 위에 올랐을 때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약간의 아쉬운 평이 오갔던 것으로 안다. 존의 코끝은 빨개져있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있는 눈은 잘 보이지 않았다. 좌석에 따라서는 빛이 반사되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존의 표정을 읽고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던 관객들에게 안경은 일종의 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부 코지군이 의도한 것이었는데, 일부러 눈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하려 했단다. 안경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존의 필터였다. 나는 여기서 'Rent'의 마크를 떠올렸다.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의 모습을 기록하던 그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필터링된 세상을 보던 그를.. 마크와 존, 두 인물 모두를 연기한 경험이 있는 코지군은 어딘가 연결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깨달음을 얻고 "엔젤, 난 들려! 보여!" 라며 뛰어나가던 마크처럼, 존도 안경을 벗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게 될 날이 올까?

이번 무대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Rent'의 색을 내려하진 않는다. 2006년 버전처럼 'Green Green Dress'에서 'Tango Maureen'의 춤을 추거나 마이클의 고백 뒤에 흘러나오던 'Will I' 의 익숙한 선율도 없다. 하지만 틱틱붐을 통해 렌트로 이어지던 조나단 라슨의 마음이 강하게 느껴지는 무대였다. 


옥상에 올라와 베란다에 기대어 마리화나를 피는 존, 째깍째깍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마치 귓가에서 벌레가 윙윙 대듯 머리를 흔들다 손으로 휙 잡아버린다. 그때, 수잔이 올라온다. 그린 드레스를 입고 빙그르르 도는 수잔에게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Green Green Dress


달빛에 드러나는 관능적인 실루엣

너는 바로 줄리엣

밤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로미오


Green Green Dress

몰라볼 정도야

The Green Green Dress

백마를 타고

Green Dress

사랑을 속삭여

그 Green Green Dress

독점하고 싶어


(하략)


원작에 있는 실루과 줄리의 라임을 살려준 것도 좋았고 거기에 '로미오'를 더해주는 센스를 발휘한 코지군발(發) 가사. 백마를 타고 사랑을 속삭이는 로미오라.. 훗, 코지군 답다.


30/90에서 Green Green Dress-Johnny Can't Decide로 넘어가는 부분은 자칫하면 늘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코지군이 연기하니 순식간이다. 혹시나 대사가 생략된 부분이 있나 살펴봤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연기하는 템포의 차이일까? 틱틱붐은 독백이 많아서 특히나 배우의 실력에 따라 감상이 크게 달라지는 작품 같다. 화려한 연출이나 퍼포먼스로 얼버무릴 수 없는 작품인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하는 존. 결코 힘주어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하지만 그 어느 말보다 강하게 전해진다. 아래 영상은 06년 버전이지만 예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 가 나오니까 참고로 올려보았다. 신기한 게, 아니 의도한 것이겠지만 06년 버전과 지금의 캐릭터는 전혀 다른데 저 대사가 주는 느낌은 같더라.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것만 쥐고 있으면 괜찮다고 하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핵의 부분을 초연 때 이미 얻었으므로 그것을 표현한다고 하는 의미에서는 변하지 않네요. 반대로 말하면 내 안에 있는 확실한 것이 전해지면, 어느 정도는 벗겨내거나 표현을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 


- 야마모토 코지「tick,tick... BOOM!」인터뷰 중 - 


아무리 겉모습이 바뀌든 연기 스타일이 바뀌든 간에 그 핵심은 변하지 않으니까 이상(理想)이라고 했던 그때의 존도, 또 다른 이상(理想)이 되어버린 지금의 존도 모두 '존'으로 받아들여진 것이겠지. 



나는 존이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하는 게 좋다. 국내에서는 이 부분의 번역을 '작곡'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음악과 작곡은 단어의 스펙트럼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작곡이라 하면 어쩐지 비즈니스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음악이라고 하는 게 존의 순수한 열정과 한층 어울리는 표현 같다.


Johnny Can't Decide

2012 일본


존: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새벽녘
오늘의 마지막을 새삼 깨닫는다
음표도 없는 새하얀 오선지는

내일 따위 연주하지 않아 

수잔:
평온한 바다를 비췄던 새벽녘
두 사람 함께하면 맞이할 수 있겠지

방 안 시간만이 
발소리도 내지 않고 지나간다 


마이클:
꿈은 새벽과 함께 깨는 거야
손을 뻗는다해도 잡을 수 없는 환상

존:
거리는 웅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해
지도도 들지 않은 채로
도표 같은 건 없는 채로
무엇을 향해 가는 거니?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계속되는 길은 (계속되는 길은)
어디를 향해 어디에 도착하는 걸까?

존 : 음악을 만들고 싶어
      지금 이 순간에도 피아노로 향해 모두가 들어주고 기억할 만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
      앞으로도 계속..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을 뿐이야

걸음을 내딛으면 눈앞은 
(거기에 있는 건) 어둠 속
새벽이 투영한 내일 따위
(보이겠죠)
    (보이겠지)
      보이지 않아

단지 혼자서
(보이겠죠)
    (보이겠지)
      다만 조용히

아침이 밝아온다  

존 : 그리고 오늘도 또 일하러 가지 않으면..


아... 코지군, 왜 가사가 아니라 한 편의 시를 써 놨어ㅠㅠ
참고로 한국판 가사를 보면 내가 왜 코지군을 시인 반열에 올려놨는지 단번에 이해가 될 것이다. 


아마 한국판이 직역에 가깝겠지만,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하는 것부터가 나에겐 에러야.

이번 무대는 코지군 혼자서 연출하랴, 번역하랴, 연기하랴 바빴다 보니 나 역시 연출 칭찬하랴, 번역 칭찬하랴, 연기 칭찬하랴 바쁘구나 ㅋㅋㅋ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3)편도 써야지. (1)에서 (2)로 넘어가는데 1년 걸렸는데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