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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TTB

뮤지컬 틱틱붐 2012 in 도쿄 (1)

by 캇짱 2012. 10. 5.


뮤지컬 틱틱붐 
9월 22일(토) PM 5:00
아울스 폿 F열 9번

작사ㆍ작곡ㆍ각본 : 조나단 라슨
번역ㆍ번역 가사ㆍ연출 : 야마모토 코지
음악 감독 : 마에지마 야스아키
출연 : 야마모토 코지, 스미레, 제로 


2년전 틱틱붐을 보며 서른이 되기 전에 이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공연이 재상연되는 텀을 감안할 때 아슬아슬하려나 생각했지만 기회란 의외의 곳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그 바람을 이루게 될 줄이야. 공연을 보러 가면서 아무래도 최근에 본 한국판과 비교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극장에 들어선 순간 깨달았다. 이건 비교대상이 될 수 없구나. 소위 말해 공기부터가 달랐다고 할까. 극장 안에 발을 디디자 들려오는 째깍째깍 초침 소리,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 왠지 모를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관객들, 일행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 공연 시작 전에 보이는 지극히 익숙한 풍경인데도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나는 이미 오늘 무대의 한 페이지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 주위는 고요해지고 가만히 무대를 응시하는 시선의 끝엔 존이 있었다. 

이건 <Johnny Can't Decide> 때 같은데 의상 참고 차원에서. 
어찌된 게 무대 사진 풀린 게 이거 뿐이냐ㅠㅠ
 
존은 목 늘어난 티셔츠에 진바지 차림, 예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안경까지 장착. 누가 봐도 찌질한 모습으로 극의 대부분에 등장한다. (덕분에 같이 간 지인이 코지군의 미모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추레하다며 ㅋㅋㅋ 하지만 극이 끝남과 동시에 안경을 벗자 역시 잘생겼다고^^;;;) 저 안경이 이번 연출에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는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가끔 청자켓을 입거나 워크샵 때는 촌스러운 황토색 체크 양복을 입거나 한다. 청자켓은 저 위의 포스터에서 입고 있는 의상인데 본 무대에서도 활용하더라. 자켓에 양손을 찔러넣고 구부정한 등으로 무대 위를 오갈 땐 정말 사랑스러웠다.
마이클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수트를 갖춰입어 척 봐도 성공한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했고, 수잔 역의 배우는 모델 출신답게 기럭지가 길어서 전체적으로 스타일이 좋았다. 그린 드레스를 노래할 때는 실제로 그린 드레스를 입거나 카렛사일 때는 야구 점퍼에 스키니진 차림으로 발랄하게, 솔로 넘버 때는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 그 밖에도 역할에 따라 자주 의상을 갈아입었는데 어느 것이나 매우 잘 소화해서 눈이 즐거웠다. 

무대 왼편엔 언뜻 새장 같아 보이는 원형의 구조물, 그 앞에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 2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편 베란다로 이어진다. 그 앞에는 펜스가 세워져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지만 적재적소에 이용되었다. 차가운 도시 느낌의 철제 구조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마스 장식 때나 사용하는 반짝반짝 램프가 달려있어 따스함이 느껴진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느낌이 살짝 'Rent' 를 생각나게도 했다. 밴드는 무대 가장 뒷편에 자리하고 있어 극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고, 한편으론 무대 구조물 틈새로 밴드의 움직임이 보여서 연주에 생동감이 느껴졌다. 극장의 울림이 좋아서 밴드 소리가 굉장히 풍부하게 느껴지면서도 대사나 노래를 가리지 않아, 음악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건반을 치는 마에지마 씨를 유심히 보았다. 코지군의 건반 씽크가 놀랍도록 정확해서 언뜻 보면 코지군이 치는 거 같은데 (내가 앞자리만 아니었으면 완벽하게 속아넘어갔을 정도로) 알고보면 마에지마 씨가 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데 어쩜 그렇게 합이 잘 맞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씽크된다. 그동안 한국에서 틱틱붐 무대를 볼 때마다 밴드와 배우가 합을 맞추는 눈짓이 여간 신경에 거슬리는 게 아니었는데 (나 이제부터 건반치는 시늉을 할 거니까 동시에 건반 소리를 내주세요~ 하면서 밴드석과 눈으로 주고받는 신호. 내가 예민한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걸 발견하면 극에 집중해서 보다가도 급현실로 돌아와버린다.) 그런데 이들은 얼마나 연습을 했길래! 그런 눈빛 교환 없이도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일단 코지군부터가 아무 건반이나 막 누르는 게 아니라 양손으로 완벽한 연주를 하고 있고 마에지마 씨는 그에 맞춰 소리를 내준다. 이 놀랍도록 정확한 타이밍은 마치 한 몸과도 같았다. 코지군과 마에지마 씨는 이전부터 갓스펠, 리틀샵 오브 호러즈,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헤드윅 등 많은 작품을 함께 해 온 것으로 아는데, 그간 쌓아온 환상적인 파트너쉽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보고 있자니 코지군은 '30/90'을 비롯하여 'Why' 라든지 'Louder Than Words' 등 극중에서 존이 연주하는 웬만한 넘버의 악보를 외우고 있는 듯했다. 아니 노래하는 배우라면 악보를 외우고 있는 것은 당연할테고, 여기서 말하는 건 그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솔직히 존 역을 연기하는 배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데 지금껏 이 정도로 해주는 배우를 못 만난 게 이상하다. (존=조나단 라슨=틱틱붐의 원작자니까 그 넘버들을 자신이 작곡했는데 당연히 연주할 줄 알아야 하는 거잖아. 게다가 틱틱붐은 원래 조나단 라슨이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하던 극) 가만 보면 코지군의 모든 무대가 그렇다. 보고 나면 '그래, 이 역할은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이 정도 해주는 배우를 달리 찾을 수가 없다.  

먼저 무대에 나온 존이 자신을 소개하고 서른살이 되는 심정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음을 듣자마자 '아, 오늘 코지군 목 상태가 안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일 계속된 하루 2회 공연 탓인지 목소리가 거칠다. 사실 목 상태 까짓꺼 안 좋아도 연기로 승화하는 배우지만 헤드윅 때 득음 야마코지를 영접한 뒤로 그의 노래에도 허들이 높아졌달까. 코지군이 번역을 새로 했다더니 가사도 많이 바뀌었다. 지난 버젼 가사에 익숙한 나로서는 처음엔 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일본어를 하나하나 멈추어 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세션하려 했다'는 그의 말마따나 어느 순간부터 억지로 알아들으려는 노력 없이 그저 음악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