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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의 산물/Drama 열전

아내가 돌아왔다 - 착하게 살면 손해보는 더러운 세상

by 캇짱 2010. 4. 16.

스브스 아내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아내가 돌아왔다」가 끝이 났다. 처음엔 그저 밥 먹을 때 심심해서 힐끔힐끔 보던 것이 어느 새 푹 빠져들어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 중 드라마 하는 시간만 기다렸던 것 같다. 7시 15분에 맞춰 귀가하려고 부던히도 애를 썼으며 혹여 1회라도 놓치면 반드시 다시 보기로 챙겨봤다. 일일드라마의 특성상 월-목은 지지부진한 전개였지만, 어김없이 금요일의 폭풍 전개에 낚여 주말이 오는 것이 싫을 정도였으니.. 이제와 말이지만 수목드라마 3파전으로 모두가 들떠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아돌만 챙겨봤던 나는,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혼자서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왜 하필 빠져도 일일드라마에 빠져서는ㅠㅠ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

드라마는 정유희/유경 이라는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로, 배우 강성연씨가 1인 2역을 담당했다. (말이 좋아 1인 2역이지 극이 전개될수록 1인 3역, 4역, 급기야 5역을 넘나드는데 그 얘기는 밑에서 다시 이어서 하기로 하고) 고아원에서 함께 자라던 그들은 서로 다른 집에 입양되면서 헤어지게 된다. 정유희는 미국의 좋은 집안에 입양될 수 있었지만 심장이 약한 동생 정유경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정유경은 언니 대신 미국으로 입양가서 심장 수술을 받지만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한편 정유희는 고아원에 봉사를 오던 평범한 집안에 입양되지만, 가세가 기운데다 친딸이 태어나면서 눈칫밥을 먹게 된다. 천성이 착해빠진 정유희는 여지껏 키워준 것만으로도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집을 나오는데, 그 후 착실하게 삶을 꾸려나가던 중 좋은 집안의 자제 윤상우(조민기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시어머니 박정숙(선우은숙 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외딴 섬에서 딸 다은이를 낳아 키우며 오붓하게 살아간다. 정유희는 아들과 의절하고 살고있는 시어머니와의 간극을 좁혀보려 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그러던 중 다은이가 심장병으로 위독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아들과 헤어지는 조건으로 다은이의 수술비용을 약속한 박 여사. 딸을 살리기 위해 정유희는 마침 자신을 찾아 섬에 온 한강수(김무열 분)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식으로 주위의 눈을 속이고 사라진다. 윤상우는 정유희를 오해한 채로 다은이를 구해준 의사 민서현(윤세아 분)과 인연이 닿아 결혼하고 5년의 시간이 흐른다.

민서현이 친엄마인 줄 알고 자라는 다은이와 겉보기에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윤상우는 우연히 정유희와 마주치고 그 날의 진실에 대해 캐묻지만 오해만 깊어질 뿐이다. 여전히 윤상우를 사랑하고 다은이를 잊지 못하던 정유희는 상우의 집 앞을 서성이다 우연히 쓰러진 다은이를 구해주게 되고, 민서현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다. 정유희가 다은이의 친엄마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하던 박 여사는 정유희를 다은이의 보모로 들여 감시하며 갖은 구박을 일쌈는다. 마침내 윤상우는 그 날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고 다시 정유희를 사랑한다며 매달리지만 정유희는 민서현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윤상우를 밀어낸다. 하지만 결국 덜미가 잡히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민서현은 정유희가 윤상우와 함께 도망갈 것이라고 오해한다. 민서현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정유희를 찾아가 말다툼 중에 그녀를 밀치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를 방치한 채 그 자리를 뜬다. 뒤늦게 한강수가 쓰러진 정유희를 발견하지만, 대한그룹의 딸인 민서현의 동생 민이현(이채영 분)에게 접근 중이던 그는 순간적 판단으로 정유희를 산에 유기한다.

사실 정유희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쌍둥이 동생 정유경과 연락이 닿아 그녀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미국에서 M&A 전문가로 성장한 정유경은 언니의 행방불명 사건을 쫓으며 그녀를 대신해 복수를 준비하는데..


정유경 등장까지만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이러다 줄거리 다 쓰겠네. 실은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다. 솔직히 앞부분은 그리 열심히 챙겨보지도 않았고 대충 줄거리 파악만 해도 충분. 중반 무렵, 정유경의 등장부터 시작되는 복수극을 즐기는데 아무 무리가 없다. (그래도 복수를 위한 정유경의 자잘한(?) 범죄행각을 너그럽게 용인하려면 앞부분도 봐두는 게 좋다.)

이 드라마는 정유희/유경 역의 배우 강성연의 연기에 상당 부분 기대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각양각색으로 변하는 강성연씨의 변신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그녀를 거쳐간 남자만 3명. 알고 보면 마성의 여자. 정유희 / 썩소의 대가. 정유경
 / 일본 투자자. 준코 / 대한건설 사업 파트너. 제시카

강성연씨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쌍둥이 자매 뿐만 아니라, 극 중 박 여사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일본 투자자 준코, 정유경이 대한건설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으로 등장한 투자자 제시카(정유경의 미국 이름이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긴 생머리의 가발과 썬글라스를 착용하며 다리가 불편한 설정이다), 정유경이 연기하는 정유희까지 1인 5역에 아우르는 배역을 넘나들었다. 순진한 정유희인 척 굴다가 순간 목소리를 내리깔며 "가져오라면 가져 와" 라고 김비서를 압박하던 장면은 손에 꼽는 명장면이다. 언니를 괴롭히던 시어머니 박 여사에게 당당히 맞서고, 민서현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라며 소리치는 장면에선 카타르시스 마저 느껴지는데, 성악 전공자답게 남다른 발성을 가진 배우 강성연의 연기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사의 강약과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대본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있나는 착각이 들 정도. 평소 강성연씨에게 꽤나 호감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이번 작품으로 더 좋아졌다. 그녀의 다음 행보가 정말 기대된다.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M&A 전문가로 성장한 정유경의 삶도 그리 평탄치 만은 않았던 것 같다. 심장 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된 것이 아니며, 이 심장병은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정유경의 발목을 잡는다. 양부모의 이혼으로 파양되는 과정에서 언니와의 연락도 끊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유경의 강함은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며 이 집 저 집 전전했던 아픈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마음의 문을 걸어잠갔던 그녀가 언니의 복수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과 부딪히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였다. 특히 언니의 복수를 위해 일부러 접근한 민서현의 오빠 민영훈(박정철 분)과 진짜 사랑에 빠지면서 애절함을 자아냈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응원했던 커플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메인 커플에 버닝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현실적으로는 절대 안되는 관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려있었는걸. 하지만 극이 막판으로 치달을수록 민영훈의 친동생 보호 쉴드가 지나쳐 불편했고 (그 노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_-+) 덕분에 캐릭터에 대한 애정마저 반감하여 너 따우에게 유경님 못 준다. 의 결과가 되어버린 건 아쉽기 그지 없다. 모든 진실을 알고 급 차선변경에 폭풍운전으로 정유경에게 향하던 격한 민영훈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1년 후가 너무 훈훈하잖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들의 러브 라인만 다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요소로 비서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제시카의 비서로 등장하는 귀염둥이 남비서는 시청자 반응이 좋아서인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점점 비중이 늘어가는 게 보이더라. 급기야 오늘 방영한 마지막회에서는 누나동생 운운하며 10년 동안 간직해왔던 마음을 표현하는데, 그래봤자 최후의 승자는 민영훈이고.. 1년 후엔 보이지도 않고.. 어디갔니, 남비서ㅠㅠ 

마지막회는 너무나도 진부한 결말이었달까.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좋게 끝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이 드라마의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고 (정유희, 정유경의 합체 뿐만 아니라 민서현의 속죄를 빙자한 수술 집도까지도) 한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는 것을 그저 눈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드라마의 시작에 꽃무릇이 등장할 때부터 정유희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던 거겠지. 하지만 그 죽음이 제작진들이 제시한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의미로 포장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정유희는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잖아? 민서현이 자신의 동생을 자신처럼 똑같이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알면 그래도 용서가 될까?
당장 자수해도 시원찮을 판에 마지막회까지 의사 가운을 벗지 않던 민서현과 그나마 동정의 여지는 있으나 저지른 일에 비해 한없이 죗값이 약해진 한강수. 현실이라면 도저히 용서와 화해가 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바로 드라마-라는 거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착하게 살면 손해보는 더러운 세상인거다. 정유희의 죽음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등장인물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그저 의의를 두어야겠다. 언니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정유경의 앞으로가 걱정되었지만 1년 후,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등장하여 한시름 놓았다.

통쾌한 복수를 기대했던 예상과는 다르게 이혼하네 마네 엿가락처럼 늘어나던 전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도 존재 이유를 모르겠던, 단지 자신의 발연기만을 증명하고 사라진 '이지은'이란 캐릭터, 자신이 했던 말조차 기억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순적인 행동 등 (특히 윤상우가 자기는 유희에 대해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며 사실은 유경이었던 유희의 행동이 이상해도 유희니까 용서하고 믿었다고 할 때는 히껍했다) 쓴소리 할 부분은 많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지막회까지 보고 나니 그런 것을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콧물 쏟으며 열연을 한 윤세아씨를 비롯한 모든 배우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는 이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즐거웠다.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