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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말한다

뮤지컬 더 씽 어바웃 맨

by 캇짱 2009. 11. 24.



뮤지컬 더 씽 어바웃 맨
11월 22일(일) PM 6:00
신촌 The STAGE 1층 C열 11번


이건명, 이승원, 조진아, 송이주, 신하나
 


이상하게 요즘 공연만 보러 가면 비가 온다. 남한산성 보러 성남까지 꾸역꾸역 갔던 날도 비가 왔었다. 롬앤줄을 보러 새로 개관한 극장을 찾을 때도 비가 왔다. 그리고 엊그제도 비가 왔다. 집을 나설 때부터 비가 내리면 우산을 챙겨 나왔으련만 목적지에 다다라 지하철역을 나오기만 하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편의점에 들러 우산을 구입한다. 요즘 비닐우산은 비닐우산 주제에 가격이 상당하다. 그리고 이 우산에 할애하고 만 나의 피 같은 돈(이라고 쓰고 준비성 없는 자신에 대한 꾸짖음)이 그 날 공연 초이스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적어도 더 씽 어바웃 맨은 우산에 쓴 돈이 아깝지는 않았어..

공연을 보러가기 전에는 간단히 시놉 정도만 읽고 가는 편이다. 몇년 째 공연 관람을 취미로 하다보니 모르는 작품이 거의 없어졌지만 (그러니까 시놉 정도만 알고 가고 싶은데 본의 아니게 스토리를 줄줄 꿰고 넘버를 달달 외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가끔 제목조차 생소한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더 씽 어바웃 맨에는 그 신선함이 있었다. 알고보니 이번이 초연은 아니라지만 나에게는 초연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바람 핀 상대와의 동거라는 그 기막힌 상황설정에서 생겨날 해프닝들을 상상하며 유쾌한 작품이기를 기대했다.

기대한만큼 유쾌한 작품이었다. 스토리도 배우도 세트도 의상도 어느 것 하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내가 이 작품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유쾌한 재미' 였고 다른 것은 아무려면 좋았다. 재미있었으면 그만이다. 물론 작품도 잘 빠지고 재미까지 잡았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모처럼 웃음 코드가 맞는 작품을 만난걸로 만족했다. 그리고 나의 이 웃음 코드가 다른 사람과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톰 역의 이건명씨는 극 초반에는 뭔가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부인을 두고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남편 역이다.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닌데, 평소 이건명씨의 착실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역이다 보니 '어라, 이건명씨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라며 뜯어 말리고 싶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음에서 오는 거부감이랄까. 그러고보니 이 배우, TL5Y의 제이미도 했었지. 왜 이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 한걸까? 하긴 그는 제이미였을 때도 나쁜 남자라기 보단 설득력 있는 바람둥이였어.. 
그런데 극이 진행되면서 그 맞지 않는 옷을 점점 자신에게 맞춰가더라. 바람둥이이고 나쁜 남자인 건 맞는데 빈정대고 찌질하고 소심한 남자. 순간순간 보이는 썩소가 꽤 마음에 들었다. 
 
세바스찬 역의 이승원씨는 연기면에선 괜찮았다. 더블 캐스트지만 팀을 짜서 연습하다 보니 배우들끼리의 어울림은 좋아보인다. 문제는 노래가 안 된다. 성량 부족이니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성량도 부족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래가 안 된다. 노래가 무엇인가. 가사에 악곡을 붙인 형식으로 사상 ·감정 등을 표현하는 예술행위 라고 네이버 사전에는 나와있군. 그런데 이 분 노래에는 가사는 있는데 악곡이 없다. 건명씨랑 함께하는 넘버가 있는데 한 사람은 노래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건만 한 사람은 가사를 읽고 있더라. 분명 같은 리듬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는데 톰이 부르는 소절은 노래로 들리고 세바스찬이 부르는 소절은 가사만 들리는 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피아노 반주에 멜로디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리듬을 타기 어려운 듯 했다. 만약 건명씨와 함께 부르지 않았다면 나 역시도 모르고 흘려들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분명한 건 건명씨는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승원씨 부분도 노래였을 것이다;; 새삼 건명씨에게 음악적 감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 안에서 톰 만큼이나 세바스찬의 비중이 큰데, 이왕이면 건명씨에게 걸맞는 세바스찬을 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루시 역은 비중이 없더라. 그래서 특별히 할 말도 없구나. 조진아씨는 톰과 있을 때나 세바스찬과 있을 때나 비주얼이 잘 어울렸다. 김선경씨나 안유진씨가 연기하는 루시는 상당히 다른 느낌일 것도 같은데, 궁금하지만 건명씨와 만나는 날이 없네. 크로스 조합이 보고 싶다구요.

공연 5회째인데 아직도 마이크 사고가 있었다. 배우가 순간적으로 말이 꼬여 대사를 버벅이거나 하는 실수는 웃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빈틈은 얼마든지 사전 방지가 가능한 부분이다. 신경 좀 쓰자. 비단 이 작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의상이 참 없어보인다. 항상 느끼는 건데, 더블 캐스트면 의상도 돌려입나보다. 배우에게 맞는 사이즈의 옷을 입혀달라고. 설마 톰의 의상은 박상면씨 기준으로 맞춘건가. 아무리 봐도 건명씨에겐 커보여. 세바스찬의 의상도 그래. 예술가라기 보단 거지꼴에 가깝다. 후반부의 변신을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해도 그 담요를 뒤집어쓴 것만 같은 코트는 제발 사양이다. 가죽 소재의 간지나는 코트 많잖아. 똑같은 예술가에 돈 한푼 없지만 렌트의 등장인물들은 세바스찬과 비교하면 패션 리더였어.


여기서부터는 짤막 메모.

- 멀티녀를 담당한 배우는 이 정도면 무난한 듯. 멀티남은 좀 더 분발해주길 바란다.
- 공연 중에는 제발 문자질 하지 말고. 입 다물고 조용히 보자. 너네 집 안방 아니다.
- 왜 세트를 2층으로 지었는지 모르겠다. 3열에 앉았는데도 공연 다 보고 나니 목이 뻐근해서 혼났다.
- 기억나는 넘버가 없다. 나름 5중창도 있던데 노래 실력이 다 제각각이라 멋진 화음을 기대할 순 없다.
- 피아노 반주 덕분인지 TL5Y 생각이 간절. 전주 부분이 비슷한 넘버가 몇 개인가 있었다.
- 개인적으로 톰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루시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이 좋았다.
- 극장 분위기나 주변 환경들을 감안한다면 신촌 보다는 대학로에 어울리는 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