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김종욱 찾기
10월 10일(토) PM 4:00
예술마당 1관 A열 13번
강필석, 곽선영, 김종구
본 적은 없지만 본 것만 같은 극이있다. OST를 들어서 넘버가 익숙하고 포스터도 자주 접했으며, 아마도 스토리 역시, 로맨틱 코메디 장르에서 예상 가능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을테지. 꾸준히 상연된 작품이기에 주위에서 이미 볼 사람은 다 봤고, 정작 자신은 보지 않았지만 데이트용으로 추천해주곤 했던 작품. '김종욱 찾기'다.
그렇게 마치 본 것만 같은 작품을 새삼스럽게 챙겨보기 위해선, 적잖은 결심이 필요했다. 같은 티켓값으로 취할 수 있는 다른 공연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작품을 택할 만한 어떠한 계기. 그리고 '강필석' 이란 배우는 그 계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티켓은 우연한 기회에 양도받았다. 사실 본다고 결심만 했지, 직접적으로 티켓을 예매할 정신은 없었다. 그러던 중 양도 제안이 왔고 덥썩 물었다. 지난 달 렌트 모임(이라고 쓰면 렌트 관련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걸로 생각하려나. 그런 거창한 모임은 아니고 그냥 렌트 본다고 뭉쳤을)때 '강필석씨의 김종욱이라면 보고 싶어' 라고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것을 잊지 않고 제안해줘서 고마웠다. 뭐든 말해두고 볼 일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잡지 못했을 소극장의 A열.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더 가까웠다. 당시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대신한다. 배우와 스스럼없이 눈이 마주칠 수 있는 거리.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다. 그 동안 너무 대극장으로만 다녔었나 하는 생각도 잠깐. 불이 꺼지고 극이 시작된다.
예상했던 것처럼 시종일관 유쾌하고 발랄한 극은 아니었다. 시종일관이란 말만 빼면 유쾌발랄은 어느 정도 성립한다만. 초중반의 생동감 있는 느낌을 마지막까지 끌어가지 못한 건 아쉽다. OST로 그 제목 만큼이나 참 좋은 느낌을 받았던 좋은 사람이라는 넘버가 나올 즈음에 나는 지쳐버린 것 같다. 그 뒤에 반전이라고 하는 내용은 공감도 안가고 어이가 없을 따름이고. 그 와중에 나는 또 극을 잘못 이해해서 잠깐 샛길로 빠지기도 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된다) 여주인공이 술집에 김종욱의 민증을 흘리고 갔을 때, 여주인공=김종욱 인 줄 알았다. 오옷! 괜찮은 반전인데? 라고 잠시잠깐 생각했다가, 자기 딸 이름도 모르는 아버지의 존재가 마음에 걸려서 곧 그 생각을 접었더랬다;; 그렇게 다시 제대로 된 노선을 탔을 때는 이미 여주인공은 찌질대고 있었고 속으로 이건 아니자나~ 라고 백만번 정도 외친 거 같다. 나도 굉장히 자기방어적인 사람이라 그 심정 모르는 건 아닌데, 받을 거 다 받고 민폐 끼칠 거 다 끼치면서 다가오지 말랜다. 이건 내숭 100단이 밀고 당기기 하는 거지 어딜봐서 자기 방어? 마지막에 결국 첫사랑 김종욱을 만나러 가는데, 왜 갑자기 그런 결심이 섰는지도 의문이고. 이후에는 남주인공이랑 해피엔딩을 예고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아 거참, 드럽게 튕기네'
극은 그랬다는 거고, 김종욱(첫사랑)과 강필석(남주인공)의 1인 2역 연기를 한 강필석씨는 참 좋았다. 특히 난 그의 김종욱이 좋더라. 과연 '턱선의 외로운 각도와 콧날에 날카로운 지성'의 원조라고 할 만 했다. 완벽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빈틈이 많았던 남자 김종욱. 비행기 안에서의 첫 만남이나, 인도에서 낙타 타다가 멀미 때문에 이틀만에 귀가하여 쓰러지는 각도가 예술이었다. 흡사 만화에나 나올법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도 손발이 오그라들게 잘 소화했다. 김종욱일 때의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워서 그냥 마냥 계속 듣고 싶었다. 아 내가 왜 이 분 나오는 쓰릴 미를 안 봤을까. 쓰릴 미란 극 자체를 안좋아해서 그랬던 거지만 그래도 이 분이 나왔으면 한번쯤 더 봤어도 좋았을 텐데. 라는 뒤늦은 후회.
강필석일 때의 연기는 평소 그의 이미지에서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새로운 면을 보았다는 점에서 좋았다. 이전에 보았던 나쁜 녀석들도 코믹터치의 극이었지만 강필석씨는 멋졌거든. 그런데 이런 찌질한 역도 어울린다니 의외다.
강필석씨의 제이미가 보고 싶다. 나쁜 남자도 참 잘 어울릴 거 같아.
곽선영씨는 이번에 처음 본 배우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왔다는데, 나는 더블인 정현 플뢰르로 봐서.. 대극장에서 보면 또 다른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첫인상은 소극장에 잘 어울리는 배우랄까. 평범한 듯한 외모에 목소리는 참 예쁘고 노래도 잘 한다. 다만 약간 연기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좀 더 지나면 나아질 거라 본다. 여주인공 캐릭터에 내가 공감하질 못해서 별다르게 덧붙일 말이 없네.
김종구씨의 멀티맨은 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이전에 다른 멀티맨들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비교한다해도 그의 멀티맨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 못해도 중간은 갈 거란 생각. 개인적으로는 용숙이나 티퐈니, 스튜어디스 등의 여장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과연 내가 이 극을 다시 보게 될까는 의문이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