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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TL5Y

뮤지컬「The Last Five Years」2010 in 오사카 (4)

by 캇짱 2010. 5. 26.

야마모토 코지의 전작은 헤드윅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발과 우스꽝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 과도한 분장. 그 분장을 하고도 충분히 예쁜 사람이었지만 비주얼적으로 본연의 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임이 분명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제이미는 헤드윅 때와는 다른 의미로 비주얼 쇼크였다. 치렁치렁한 가발도 과도한 분장도 없는 제이미, 물론 가벼운 얼굴 분장 정도야 했겠지만 한번 등장하면 퇴장이 거의 없는 이 2인극에선 그것마저 눈물과 땀으로 씻겨 내려가버린다. 그러니까 무대 위에 있는 것은 온전한 인간 사람으로서의 모습, 자연체 야마모토 코지인 것이다. 뭔가 거창하게 쓰긴 했지만 결론은 이 남자, 잘생겼더라고! 이 말이 하고 싶었어ㅠㅠ 몇 번을 말하지만 분장이 오히려 미모를 죽이고 있다구요.

캐시의 넘버가 끝나고 기다리던 제이미의 등장이다. 무대 위에는 진작부터 나와있긴 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정한 제이미의 차례라고 볼 수 있지. 캐시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제이미는 드디어 나의 여신을 찾았다고 노래한다. 이 넘버의 제목은 'Shiksa Goddess'. 풀이하면 '유태인이 아닌 여신'을 의미하는데, 작년 한국판에서도 이 넘버만큼은 '식사 가디스' 라고 소리나는 발음 그대로 제목을 가져다썼던 걸로 기억한다. 억지로 풀어쓰자면 너무 길어지고 느낌이 살지 않아서 일테지. 그 익숙하지 않은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제목 만큼이나 멜로디 역시 단번에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듣기도 힘든데 부르기는 오죽할까. 'The Last 5 Years'의 넘버 대부분이 어렵지만 나는 단연코 이 넘버를 제일 부르기 어려운 넘버로 꼽는다. 보통 이상의 리듬감과 박자감이 요구되는 멜로디도 그렇지만 의외로 연기하기 까다로운 넘버거든. 가사만 보면 사랑에 빠진 황홀함을 표현하면 되겠고 특별히 어려울 게 있나 싶다. 하지만 꼭 그만큼만 표현해야 하는 것이 어려운거다. 지나친 감정고조는 주의해야 한다. 이 넘버에서 지나치게 들뜨게 되면 다음 넘버인 'Moving too fast' 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감정이 없어 갈피를 못잡게 된다. 제이미는 'Shiksa Goddess' 에서 여신 캐시를 만나고 다음 넘버인 'Moving too fast' 에서는 사랑하는 여신이 곁에 있는데다 일도 끝내주게 잘 풀려! 인 상태가 된다. 즉, 'Shiksa Goddess' 에서 또 한번 감정이 고조되는 것이 'Moving too fast' 인데 그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배우가 드물더라. 그 점에 있어 코지군은 훌륭했다. 'Shiksa Goddess' 에서의 감정이 과하지 않아서 좋다. 이건 틱틱붐 때도 느낀거지만 극의 전체를 조망해 단계별로 감정을 조절해가는 능력은 정말 탁월한 배우다. 

Shiksa Goddess : TL5Y Japan 2010

I'm breaking my mother's heart
유태인의 규정을 어기고 이교도인 너에게 빠져버렸으니까
I'm breaking my mother's heart
내 고향은 폭발하기 직전이야
무덤 속에서 조상님도 화내실거야
용서하지 않겠다고

문신했다 해도 괜찮잖아
스킨헤드라도 최고지
만약 네가 스페인인이나 일본인,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상관없어
유태인만 아니라면
지금이 떠날 때야 뛰쳐나올 때야
I'd say 헤이 헤이 너야말로
애타게 기다리던 여신이야

생각이 나
Danica Schwartz and Erica Weiss
And the Handelman twins
I've been waiting through Heather Greenblatt,
Annie Mincus, Karen Pincus and Lisa Katz
Stacy Rosen, Ellen Kaplan, Julie Silber and Janie Stein
마을 여자들과 염문이나 뿌리며 살았는데
너를 본 순간 숨이 멈췄어
너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며 잠 못 이뤘어
심장이 관통당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유태인 민족의 수난도 관계 없어!

배꼽에 피어싱 괜찮잖아
사실은 남자라거나 전과가 있거나
네 엄마랑 오빠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 해도
아버지가 오카마라도 괜찮아
누구도 완벽하진 않아
완벽하지 않아
I'd say 헤이 헤이 너야말로
애타게 기다리던 여신이야

아- 너야말로
아- 빛이야
아- 너의 이야기 쓸거야
이 손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아
망설임 같은 건 버렸어
누가 뭐라 하건 알 게 뭐야
그래 나는 될거야
너만의 노예가
무엇이든 할거야

I'd say 헤이 헤이 헤이 헤이
찾아왔어 계속
너야말로 분명
내 생애 단 한명 뿐인 여신이야


처음 무대에 등장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확실히 알겠다. 다르다. 내가 알던 제이미가 아니야. 제이미를 거듭 연기하는 코지군을 보며 '같은 역을 연기하고 있지만 몇 번을 봐도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던 연출가의 말이 떠올랐다. 무대 위의 그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새로운 제이미였다. 한 배우가 같은 역을 다시 연기하게 되면 이전과 같은 수준이거나 거기서 조금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거늘 이건 아예 새로운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초연으로부터 5년이나 지났으니 외모나 목소리에 변화가 왔고 거기서 기인한 차이도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사실 외모적으로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지만 (여전히 제이미가 '23살' 이라고 해도 믿어주는 분위기였고)  '젊음' 이란 꼭 외모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 초연의 그 반짝반짝함을 따라갈 순 없겠지. 초연의 상큼함은 그것대로 그 때 아니면 볼 수 없었던 것이기에 소중하다. 생각난 김에 초연 모습을 보니 젊은 게 좋긴 좋군.

하지만 내가 느꼈던 건 그러한 외형적인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다름' 이었다. 잘 숙성된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초연의 제이미가 매끄럽고 막힘없이 술술 넘어갔다고 한다면 이번 제이미는 천천히 목구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목 뒤로 다 넘어간 후에도 여전히 향기가 남아 떠돈다. 어딘가 고집스러우면서도 성숙한 제이미. 고집과 성숙, 서로 모순되는 단어 같지만 그의 연기 속에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의 제이미는 작가로서의 고집이 있고 사랑에 있어선 성숙했다.  

초연에 비해 곡의 템포가 느려졌는데 'Moving too fast' 에서 확연히 티가 나더라. 덕분에 너무 빨리 뜨고 있는 제이미를 보며 거꾸로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템포 비교를 위해 앞부분만 짤막하게 소개해보자면,  



 일본 초연 2005

 일본 재재연 2010

 귓가에서 알람이 ringing
 덧붙여 사이렌도 대음량으로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주변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는 마치 피겨 스케이터처럼
 순조롭게 쾌속
 미래로 UP 한 기분
 내 주변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귓가에서 알람이 ringing
 덧붙여 사이렌도 대음량으로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I've got a singular impression
 Things are moving too fast

 
나는 마치 피겨 스케이터처럼
 순조롭게 쾌속
 미래로 UP 한 기분
 I've got a singular impression
 Things are moving too fast


아악! 느려! 느리다고!
원곡의 빠르기를 몰랐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텐데 그러기엔 너무나 귀에 익숙한 넘버였다. 코지군이 저 빠르기를 소화할 능력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초연 때 이미 잘만 불렀거늘 도대체 왜! 왜! 느리게 편곡했냐고. 비단 이 넘버 뿐만이 아니라 곡의 템포가 전체적으로 느려진 것 같다. 다른 넘버는 그렇다치고 'Moving too fast' 가 느려지니까 정말 답답해서 혼났네. 가사가 전보다 잘 들리는 건 좋은데 애초에 코지군의 가사전달력이 나쁜 편도 아니고 넘버의 매력을 죽이면서까지 가사를 중시할 건 아니라고 봐. 그렇게 가사전달력을 높이고 싶었다면 영어 가사부터 어떻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템포가 느려졌 건 어쨌든 간에 곡소화력은 뛰어나구나. 이전에는 곡에 자신을 끼워맞춘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제는 완벽히 코지군 주도 하에 자유자재로 노래하는 게 느껴진다. 이전에 비해 코지군만의 색깔이 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을까.

넘버를 잘 소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목소리에 변화가 온 것은 안타까웠다. 내가 본 게 막공 전날이어서 피로가 누적된 것도 있겠고, 낮공이라서 목이 덜 풀렸기도 했겠지만. (일본의 공연 시간은 정말 미스터리리다. 오후 1시에 공연을 하는데도 객석이 꽉꽉 들어찬 것은 물론이와 1시에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은 밥은 제대로 먹고 하는건지 궁금하네) 그런 문제를 떠나서 목소리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가 느껴졌다. 아마 헤드윅 때문이겠지. 그 작품 하면서 목이 많이 상한 거 같다. 이제 코지군 앞에 미성이라는 말은 절대 붙일 수 없겠더라. 물론 그의 허스키 보이스도 정말 좋아하지만 예전 같은 청량감은 없구나..ㅠㅠ

벌써 공연을 본 지 한달이나 지났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제이미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깔끔하게 털어버리고 다른 역에 매진하고 있어서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5)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