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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말한다

뮤지컬 모차르트! - 나의 임느님은 이러치 아나ㅠㅠㅠㅠ

by 캇짱 2010. 2. 22.


뮤지컬 모차르트!
2월 21일(일) PM 3:00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아직 17일 후기도 못 썼지만 일단은 어제 보고 온 막공 후기부터 써야겠다. 이 기분으로 17일 후기는 도저히 못 쓰겠어. 어제 공연과 17일 공연과의 간극이 이만-----------------------------------------------------------------------------큼. 소위 말해 넘사벽인데 어제 공연의 여파가 남아있는 현상태에서 닥찬하는 후기를 쓰는 건 내 몸이 거부하네. 아아, 그냥 17일을 끝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했어.

어제 임태경씨는 첫 등장부터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임태경씨가 맞나 두 눈 부릅뜨고 몇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공연 전 급하게 캐스트가 바뀌어 다른 배우가 나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잠깐 했을 정도로. 그도 그럴 것이, 첫 등장부터 이미 다 자란 모차르트더라구?

내가 임태경씨의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안 본다 안 본다 하면서 결국 다 챙겨본;) 네 명의 모차르트 중에서 유일하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 그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느낌이 좋다고 이전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소년기가 없고 느닷없이 청년에서부터 시작을 하니 임태경 모차르트가 이전에 보여주던 소년기적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참고로 네 명의 모차르트를 모두 만나본 바로는, 임태경 소년->청년, 박건형/박은태 청년->청년 (박건형의 앞에는 수식어로 '건장한'이 붙어야 하고 박은태의 앞에는 '여린'이 어울릴까) 김군 소년->소년인 느낌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김군은 연기가 아닌 김군 자체로 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던데 각설하고, 어제의 임태경씨는 여느 때와 다르게 청년->청년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다른 두 배우도 그런 식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임태경씨가 보여주던 그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정말 좋았단 말이지. 빨간 코트를 입고 무대 위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세종의 공기를 바꿔놓았던 사랑스러운, 볼프~강 어디 갔니....... (← 범사마 목소리 자동재생)

그렇게 첫 등장부터 마구 물음표가 떠다니더니만 이어지는 '나는 나는 음악'은 제대로 삐끗. 듣는 나도 당황. 부르는 배우도 당황. 배우도 인간인데 항상 완벽한 공연을 할 수는 없지. 극의 흐름을 깨지 않는다면 잠깐 혀가 꼬여서 대사를 씹고 살짝 가사를 틀리는 실수 정도야 웃으며 넘어가주는 편이다. 문제는 그 불안한 느낌이 1막 끝까지 이어졌다는 거. 급기야 내 운명~을 부를 때는 정녕 여긴 어디? 나는 누규? 막공이라 긴장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다가 아예 정줄을 놔버린건가..
베버 가족 사기단의 공개 처형에 참여하기 위해 "저요! 저요!" 외쳐대는 것만 해도 그래. 다른 날은 정말 하고 싶어 달려드는 느낌이었는데 어제는 책에 써있는 건 대사요, 나는 읽어요. 임태경씨만의 섬세한 연기와 깨알같은 애드리브도 찾아볼 수 없었고. 나의 임느님은 이러치 아나ㅠㅠㅠㅠ

임태경씨 왈, 이제 모차르트를 '연기'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더라만. 어제 공연은 그것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 '좋지 않은 예'를 보여준 것 같았다. (반대로 17일은 긍정적으로 작용한 '아주 바람직한 예') 임태경씨 주도 하에 극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극이 흐르니 나도 간다-는 느낌이라서, 어떤 방향으로 연기해야지- 하는 배우의 '의지'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인 임태경 상태였달까.
이런 비슷한 느낌을 작년 렌트 오리지널 내한 공연을 보면서도 느꼈었다. 총 2번을 봤는데 그 중 먼저 만난 공연에서 아담 파스칼이 너무 공연에 성의가 없어 보이는거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로저' 라는 아우라가 나와 굳이 연기라는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게 너무 편하게 느껴지다 보니 무대에 서는 배우로서의 열정이 전해지지 않아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익숙한 극일지라도 배우란 매회 무대에 설 때마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줬으면 하는 바람..

다행히도 2막은 극의 흐름에 따라 모차르트도 청년 나이대에 돌입, 임태경씨가 1막부터 연기하던 청년 이미지와도 얼추 부합이 되었다. 그 때부터 집중력도 높아졌지만 그래도 다른 날에 비하면 많이 아쉬워.. 무엇보다 '자부심, 정신차려라' 부터 이어지는 감정씬이 좀 밋밋했고 혼란씬은 반대로 다른 날보다 격했지만 오늘따라 왜 이렇게 회복력도 빠른거야. 그 후로는 임태경씨 답지 않게 조증으로 빠지질 않나.. 대략 좋지 않았다. 내가 그 동안의 임태경 모차르트를 보지 않았다면 이 배우는 원래 이 정도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해서 아쉽지나 않지. 바로 전 회차 공연을 레전드로 찍을 땐 언제고 마지막에 와서 이렇게 배신을 때리나. 커튼콜 할 때 되어서야 감정이 격해진 거 같더라만 그 감정, 공연에 좀 쏟아붓지 그랬니ㅠㅠㅠㅠ 

그런데 이어서 밤공으로 박건형씨 공연을 보고 나니 임태경씨가 아무리 최악이어도 박건형씨 보다는 취향이었다. 아니, 박건형씨도 막공이었으니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줘야지. 그걸 감안해서 정정하자면 임태경씨가 최고로 못해도 박건형씨가 (최고로 못했을지도 모를) 공연보단 좋았어. 박건형씨의 공연은 여러가지 의미로 재미있게 봤지만 연기 측면에서 그리 좋은 점수는 못 주겠다. 박건형씨 얘긴 나중에 기회 되면 또 이어서 하기로 하고.

지난 날의 아름다웠던 임느님을 추억하며 지금 마음 같아선 지방 공연도 갈 기세! 어제 공연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기기엔 너무 아쉽단 말이지. 이건 뭐.. 잘해도 낚여, 못해도 낚여. 애증의 임느님이시여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