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야마모토 코지/뮤지컬 RENT

뮤지컬 RENT - 근래 보기 드문 눈물, 신인 배우가 보여준 진실함

by 캇짱 2009. 3. 26.



뮤지컬 RENT
3월 24일(화) PM 8 : 00
R석 1층 A열 15번

유승현, 배지훈, 조민아, 최혜진, 신미연,
최재림, 이지송, 고비현.. 그리고 끝내주는 앙상블


결국 막공까지 참지 못하고 또 보러 갔다.
왜 하필 막 내리기 일주일 전에 낚여서는 이렇게 무리한 스케쥴을 잡고야 마는가. 
마음 같아서는 매일 가서 남은 캐스트 조합을 다 찍고 싶지만 그러기엔 체력이..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 하니까 하는 말인데 2009 렌트 메인 캐스트 대부분이 나보다 어리더라?
승현아~~~~~!!!!!!
그냥 눈화가 불러보고 싶었어. 다음부턴 싸인에 ㅁㅁ씨 대신 누나라고 적어주련? <- 야

이 날 공연은 순전히 로저를 노리고 갔다. 
지난 공연도 예매는 유승현씨 공연으로 한건데 뒤늦게 캐스트가 바뀌었던터라
유승현씨에 대한 목마름은 커져만 갔고.. 막공과는 별개로 봐둬야겠다 싶더라.
영웅 로저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100% 만족했다고는 할 수 없어서, 승현 로저가 그 부족함을 채워줄지 궁금했다.
정작 더블 캐스트인 건 미미인데 어떻게 로저를 더블로 다 보게 되네.
좌석도 로저를 관찰하기 딱 좋은 맨앞 중앙블럭에서 살짝 좌측에 앉았다.
마크가 나한테 열쇠를 던져줬다고!!!  (1막 처음 콜린한테 던져주는 열쇠...^^)

승현 로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그늘이 없는 로저'. 그의 로저는 기본적으로 웃음이 많다.
뭐, 로저라고 1년 내내 땅 파고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로저 치고 캐릭터가 밝고 귀여운 것 뿐, 그 역시 고뇌하는 음악가이며
HIV 양성반응자로 자신이 죽기 전에 의미있는 곡을 쓰고 싶어한다.
대놓고 어둠의 자식을 표방하지 않기에, 한끗만 어긋나도 '나의 로저는 이러치 아나!!' 라는 반발에 부딪혔을거고..
그것이 공연 초반의 무시무시한 혹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차라리 노래를 못 하면 하드웨어가 이것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어느 순간 감안해서 보게 되지만,
이 캐릭터의 어긋남이라는 건 의외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거거든.
지금이야 캐릭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이 캐릭터를 처음 시도했을 때의 모습이 대충 그려지더라.
나만 해도 '로저는 찌질해'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그 고정관념을 부수고
'이것이 나의 로저' 라고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이 당시에는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 승현 로저는 뉴욕에서 작곡을 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면서 엄마한테
"나 지금 산타페에 있어요" "나 다시 뉴욕에서 작곡해요." 라고 꼬박꼬박 엽서를 보내는 막내둥이 로저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할 땐 연락이 닿지 않아 "너 지금 어디있는거니, 로저" 라고 부모님을 걱정시키는 도련님(훗)

귀엽다. 로저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사랑스러웠던가? 이것은 로저를 넘어서 보이는 배우 자신의 매력이기도 하다.
솔직히 렌트에서 로저라는 캐릭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명색이 주인공이라 일말의 애정은 있다만)
항상 우울하고 그늘져 있고 혼자만 아픈 것도 아니면서 찌질대서다.
그 주변까지 전염시키는 찌질한 아우라가 싫다. 너만 아프고 너만 힘든 거 아니잖아;;
물론 그러한 아픔과 고뇌가 'One Song' 을 탄생시키는 거지만.

그런데 승현 로저는 자신의 아픔을 말하기 이전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는 로저였다.
미미의 아픔을 알고, 무엇보다 친구인 마크의 아픔을 안다.
영웅 로저와 해석이 제일 갈리는 것이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로저가 산타페로 떠나면서 마크와 투닥대는 씬이 있는데, 영웅 로저는 정말 마크를 한 대 칠 것 같다;;
동등한 입장이라기 보다는 로저가 우위에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심한 말을 쏟아내며 마크를 비난한다.
하지만 승현 로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혼자 남을 마크의 아픔을 알고 있기에, 함께 아파한다.

두 배우의 캐릭터 해석은 'Another day' 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오직 오늘 뿐' 이라는 미미의 호소를 차마 한귀로 흘려보내지 못하고 
젖은 눈망울로 애써 외면하는 게 승현 로저라면, 영웅 로저는 다가오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밀어내고 거절한다.
영웅 로저가 애초에 집단과 벽을 쌓고 혼자 고뇌하는 인물이라면
승현 로저는 집단 속에 속해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고뇌하는 인물이랄까.

대부분의 넘버가 만족스러웠지만, 원 송 글로리... 나의 원 송 글로리는 이번에도 꽝이었다.
원 송 글로리가 그렇게 어려운 곡이었나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내 노래=미미 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전, 실체가 잡히지 않는 창조의 고통은
신인 배우가 넘보기엔 너무 높은 산이었나 보다.
실체가 보인 순간의 창조, 미미를 향한 'One song'(=Your eyes)이 좋았던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One song glory' 와 동일선상에 위치한 'Your eyes'는
그가 신인 배우이기 때문이야말로 더 와닿는 넘버였다.
죽어가는 미미를 끌어안고 흐느끼는 로저의 눈물을 보면서
이것은 신인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진실함 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보아 온 배우들은 연륜이 있고 여유가 있어서 무대 위에서의 감정 컨트롤에 능숙했다.
심지어 자유자재로 눈물의 양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정확히 한 방울이 필요한 순간에는 꼭 그만큼만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캐릭터의 감정을 살리기엔 충분하고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베테랑 배우는 항상 내일 공연을 염두해두고 있으며,
매일 똑같지는 못해도 비슷한 혹은 더 나은 공연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에 철저히 계산된 연기를 하며,
그 날의 감정에 따라 들쭉날쭉한 모습이 아닌 평균적으로 좋은 무대를 보여준다.
배우의 눈물은 믿지 말라고 했던가.
알면서도 속는 게 베테랑 배우의 연기내공이다.

하지만 승현씨는 다음 날 공연 따위 머릿 속에 없다.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 겠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기에 진실된 연기가 가능했다.
근래 보기 드문 눈물이었다. 눈물이 아주 바닥에 뚝 뚝 뚝 떨어지더라.
결국 커튼콜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서둘러 닦아내는 모습이 참 순수하고 예뻐보였다.

가끔 "나 연기하고 있어요" 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듯한 모션은 아쉽다.
지금 이 모습으로 유추해보건데, 공연 초반에는 정말 많이도 어색했을 것 같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딱 두 군데 있었는데, 노래하는 방법의 문제인지 뭔지는 몰라도
원 송 글로리에서 이상하리만치 오물거리는 입모양(;)
그리고 어느 장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숨을 헐떡일 때 꼭 1초에 한번씩 들썩이는 어깨.
의욕이 앞서 보여주려는 억지 연기 보다는, 아직은 배우 자신의 순수한 매력에 기대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 승현 로저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좋다.
저음이 살아있어 개인적으로 듣기에도 좋았지만 다른 배우들과의 하모니가 끝내준다.
처음에 홍보 동영상만 보고 이번 로저는 어째 밋밋한 게 락 스피릿이 살아있지 않아! 라고 생각했더랬는데,
그게 이 음색 때문인 것 같다. 로저 하면 흔히들 아담 파스칼을 떠올리니까. 걸어다니는 락 스피릿이잖은가;;  
그런데 예상 외로, 현장에서 들으니까 완전 좋더라는 말씀. 목소리에 푹 빠져서 왔다.

지난 번 공연에서 어딘가 배우가 지쳐보이는 게 좀 아쉽게 느껴지던 지송 엔젤. 
이 날은 펄펄 날아다니더라. 괜찮았다.

엔젤의 장례비를 대신 치뤄주는 베니. 콜린이 I'll cover you를 부를 때 유심히 봤는데
고비현씨 표정이 씁쓸한 것이.. 베니도 엔젤의 죽음을 통감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역시 무대는 여러 번 보는 맛이 있다니까. 지난 번엔 엔젤의 빈 자리를 보느라 놓쳤던 부분이었다.  
나중에 베니가 콜린과 함께 손을 맞잡고 술 마시러 가는 장면은 정말 좋아한다.

마크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이번 2009 캐스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배역을 고르라면 배지훈씨.
내가 당신 싸인 받으려고 기다렸는데 어디로 빠져나간 겨!!! 쉬운 남자 아니구나...ㅠ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