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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HEDWIG

e+ 스페셜 인터뷰「Hedwig And The Angry Inch」: 야마모토 코지

by 캇짱 2008.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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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의 헤드윅을 다시 만날 수 있다! 1997년,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하자마자 세상을 뒤흔들고, 2001년에 영화화 되어 일대 붐을 일으킨, 무엇보다도 과격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락 뮤지컬 헤드윅 앤드 앵그리인치. 주인공 헤드윅은 작자 존 카메론 미첼의 사랑과 슬픔을 투영하여, 인생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야마모토 코지는 그의 영혼을 살며, 충격적인 새로운 얼굴을 보였다. 그 전설적인 무대로부터 1년, 이츠학역에 한국을 대표하는 락 싱어 서문탁을 새로 맞이하여, 팬의 열광 속에, 야마모토 헤드윅이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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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뮤지컬은, 여러가지 의미로 굉장히 허들이 높다고 생각합니다만. 전부 락인데다 거의 1인극이고, 의상은 본디지로 메이크도 과격하고. 이 역을 임할 때 저항은 없었나요?
 

아무런 저항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과격한 부분은 전부 인간이 걸치고 있는 가면이라고 할까 훼이크한 부분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게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녀간의 이야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한 것을 뛰어넘는 부분이 이 작품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의상도, T셔츠건 본디지건 의미는 변하지 않습니다.

── 두르고 있는 겉모습이 아닌 본질에 매료되었다는 거군요.

매료된 것은 물론, 통했어요.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건 CD부터 였고, 그리고 DVD를 보았습니다만 그 때, 상상하고 있던 것과 다른 섬세한, 마음에 한 방울 한 방울 스며드는 것 같은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이 작품을 만든 존 카메론 미첼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필요하며 때로는 잔혹하지만 때로는 매우 멋진 일로, 그것이 곧 삶이라는. 그것은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괴롭거나 하는 건 동성애자라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저는 언제나, 인간은 모두가 헤드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앵그리 인치" 즉, 남겨진 1 인치라는 것은, 그의 인생의 상징과도 같다고 생각됩니다만 야마모토씨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신가요?

저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작품자체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만, 물론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고 매우 아름다워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마지막에 알몸이 되어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사람들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보통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훌륭하다든가 아름답다든가 말하는 것 입니다. 그것을 단지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마침 존 카메론 미첼이었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새삼스럽게 드라마틱하다고 할 것은 아니에요.

── 실제로 마지막 장면에서 의상도 메이크도 벗겨갑니다만 내면적으로도 평소보다 노출되는 감각은 있었나요?

그렇네요. 하고 있는 것은 평상시와 그렇게 다르지 않지만 갭이 굉장하니까. 드랙퀸 같은, 여러가지 휘감고 있던 것을 전부 벗어던져 간다. 어쩐지 잔뜩 옷을 벗었는데- 하는 피로감이 있었네요(웃음) 다른 작품에서는 좀 더 벗는 옷이 적고 변화도 적으니까. 그렇지만 도달하는 곳은 평소와 같습니다. 스타트 지점이 멀기 때문에 더 힘껏 달려 나간 감은 있었습니다만.

── 달려 나간 뒤엔 상쾌한 감각입니까? 

조금 달라요, 레드 존(*자동차의 한계회전영역)을 넘어선 후의, 가솔린이 떨어진 후의 폭발적인 파워 라고나 할까요. 앞질러서「해냈다!」가 아닌, 앞질러서「더 이상 안돼」같은, 거기서부터 생겨나는 에너지 같은 것이 있습니다.

── 락은 노래하는 것 자체에 체력이 필요하군요. 깨끗이 노래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것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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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이 노래하는 사람도, 분명 대단한 체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목을 상하지 않게 노래하는 발성법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그러한 방법으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작품이네요. 게다가 저는 퍼포먼스에서, 사전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되어있는 무대에는 매력을 느끼지 않아요. 진심으로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목이 상했던 적이 없다」라는 것은 배우로서 자랑은 아니라고 저 자신은 생각하네요.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통하는 방법은 있다는 것이군요. 

대신해서 무엇으로 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상처를 두려워하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이 무대는 매일 매일이 도전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매일 매일 상처를 입고 있던 것과도 같았으니까. 막이 한번 열리면 거기까지 가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면서 알아요. 그야말로 목이 상하지 않도록 이라든가 다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면, 그것은 제가 보고 싶은『헤드윅』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거기까지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에요.

── 정말 과격한 무대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또, 재연으로 거기에 임하는 것입니다만? 

재연을 한다고 들었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만 또 그 힘든 무대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단지 기쁜 것 뿐만은 아니었어요(웃음). 실은 초연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대를 멈추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무대에 나와있는 도중에 체력적으로 이제 무리, 같은. 숨을 들이마실 수 없고 노래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든 그 후의 40분을 힘내서, 그대로 병원에 갔습니다. 진찰을 받으니 꽤 한계까지 갔었다는 것 같아(웃음).

── 모든 기능의 한계까지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인가요? 

끝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괴로움을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번엔 조금은 상태를 보면서 가고 싶다는. 그렇게 말하지만 또 시작되면 레드 존을 넘어서게 될 것 같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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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



귀차니즘에 이제서야 올립니다만,
작년 12월 경 <뮤지컬「Hedwig And The Angry Inch」재연에 임하는 메세지>와 함께 올라왔던
인터뷰 입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헤드윅이란 이런 작품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특히나 단순한 관객 입장에선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달려나간 뒤의 감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모두 벗어던지고 난 뒤엔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일려나 생각했었는데.. 조금 다르군요.
한계를 뛰어넘은 뒤 거기서부터 다시 생겨나는 에너지라..
이것이야말로 직접 연기해 본 배우가 아니면 평생 가도 모를 감각이겠죠?  

목이 상했던 적이 없다-는 건 배우로서 자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대신하여 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된다.
역시 천상 배우지요? 이 남자..
표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만큼 항상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치는 걸 두려워하고 몸을 사리는 건 내가 보고 싶은 헤드윅이 아니라니,
무대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남자다운 발언이네요.

다 좋지만, 제발 몸 생각 좀 하고 달렸으면..
과호흡 와서 공연 끝나자마자 구급차에 실려갔더라는 얘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본인 입에서 들으니까 더 무서운 것이.. 그 상태에서 40분을 더 버텨냈다니요ㅠ_ㅜ
헤드윅 끝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할 터인데 바로 이와네 촬영에 들어간다니 걱정이네요.

이제 아저씨 나이도 있잖아!!!
(아저씨란 말 웬만해선 안하지만 오늘은 좀 해야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