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 공백의 시간 : 야마모토 코지(보이체크), 마이코(마리), 라치 신지(카를)
[ 의심 ]
보이체크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네 얼굴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손의 감촉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마리 : 무슨 소리야, 프란츠? 정신이 나간 거야?
보이체크 : 죄악이란 것은 이렇게 두터운 가슴과 넓은 어깨를 하고 있는 것인가!
마리 : 왜 이래?
보이체크 : 악취가 나니까 천국의 천사까지 말려버릴지도 몰라.
마리 : 이봐!
보이체크 : 너.. 새빨간 입술을 하고 있네. 물집이 생기진 않았어, 마리?
너는 죄악 그 자체인 것처럼 아름답구나.
7개의 대죄, 사형에 해당될 만한 죄악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걸까
마리 : 프란츠, 당신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는 거네
보이체크 : 젠장!
그 녀석은 거기에 서 있었지? 거기에 거목처럼 서 있었잖아!
마리 : 세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고 기나긴 낮 동안 많은 사람이 서 있었겠지, 여기에는 끊임없이 차례대로
보이체크 : 내가 이 눈으로 봤다고
마리 : 눈이 두 개 달려있고 그게 제대로 열려있는데다 태양이 비친다면 보이는 건 잔뜩 있겠지
보이체크 : 이 눈으로 봤다고!!
마리 : 그래서 어쨌다고?
오지 마! 나를 때릴 수 있으면 어디 해 봐!
그런 손에 맞을 거라면 차라리 칼에 찔리는 게 낫지
우리 아버지도 내가 10살이 됐을 무렵부턴 노려보니 손을 대지 못했다고!
....프란츠!
보이체크 : 이상하네. 네 몸 어딘가에 증표가 나타나 있을 텐데 증표 말이야, 증표..
마리 : 그만둬!
보이체크 : 나에겐 그게 보이지 않는 거야? 보일 리가 없는 거야?
그럼 대체 누구에게 보인다는 거야?
카를 : 신은 동생을 죽인 형에게 저주를 내리고
형이 그 판결에 우는 소리를 하자
신은 형의 얼굴에 용서의 증표를 남겼습니다
[ 공백의 시간 ♪ ]
보이체크 : 푸른 하늘 빛이 바래고 바람이 얼어붙어가
멀어져가는 신기루
몰래 찾아오는 밤의 장막
깨닫지 못한 채로 오늘도 지나
시간을 농락하는 것에 조종당해 춤 출뿐
그래도 그저 인생은 계속 된다
대사의 강약, 고저, 리듬감, 문어체 대사의 능숙한 구사까지 보이체크는 배우 야마모토 코지의 표현력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이 장면에선 살면서 한 번도 언성을 높여보지 않은 듯한 사람이 처음으로 화를 낼 때의 서툰 느낌을 잘 살렸고
이어지는 노래에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며 서서히 미쳐가는 보이체크의 감정선이 애절하게 표현된다.
대사와 노래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압권. 야마모토 코지를 통해 음악극이라는 장르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되는 순간이다.
결말에 대한 복선이 있는 매우 중요한 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