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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음악극 LMT

음악극「Lost Memory Theatre」기억을 잃는 극장에서 본 잊을 수 없는 무대

by 캇짱 2014. 9. 5.


8월 29일 PM 7:00 / 8월 31일 PM 3:00 (요코하마 막공)

KAAT 카나가와 예술극장


원안·음악: 미야케 준 / 구성·연출: 시라이 아키라

텍스트: 타니 켄이치 / 안무: 모리야마 카이지

출연: 야마모토 코지, 미나미, 모리야마 카이지, 시라이 아키라, 에나미 쿄코


뮤지션:

미야케 준(Piano, Fender Rhodes, Flugelhorn)

미야모토 다이로(Reeds, Flutes, Drums)

이타미 마사히로(Guitar, Mandolin, Oud) / 8/30~9/7은 이마호리 츠네오

와타나베 히토시(Bass, Mandolin)

야히로 토모히로(Percussion)

아카호시 토모코 스트링스 쿼르테트 


가수: Lisa Papineau, 카츠누마 쿄코




일단 음악극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보았지만 과연 이걸 음악극이라는 범주에 넣어도 되는 걸까? 부터 망설이게 된다. 음악이 주가 되는 건 맞지만 '극' 이라고 하기엔 대사가 매우 적고, 행위예술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움의 연속이라 보는 내내 굉장하다는 생각만 했다. 속된 말로 쩔어준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대략적인 분위기 파악을 위해 후기를 찾아보았지만 단편적인 감상말고는 별다른 후기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바로 직전 오션스11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비교되어 더욱 생경한 느낌이었다) 보고 나니 그럴 만도 하다. 글로 적을 수가 없어. 이건 직접 봐야 한다. 아니, 보고도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다반사였지만 굳이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일본어 대사가 있긴 하지만 극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래는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외국어라서 어차피 알아들을 수도 없고 말이지. 그런 면에서 자국 공연을 보고 있는 일본인이나 바다 건너에서 공연을 보러간 한국인(본인)이나 이해도에 큰 차이는 없었으리라. 솔직히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일본어조차 듣고도 뭔 소린지 몰라서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시라이 아키라 연출은 일본인도 제대로 이해하고 보는 사람이 없다며 괜찮다고 ㅋㅋㅋ 그렇게 뭘 보았는지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나는 '굉장한 것'을 보았다. 



원래 있던 객석을 9열까지 없애고 만든 깊은 무대 (덕분에 내 자리는 15열이지만 사실상 6열이라는 엄청 가까운 자리였다) 뒤쪽에는 붉은 장막이 처져 있고 그 안에 밴드석이 있다. 처음에는 음향 불량인가 생각했을 정도로 지지직 거리는 잡음과 기묘한 음악이 흐르고 무대에는 4명의 발레리나가 선글라스를 쓰고 입을 벌리고 서 있다. 응? SF? 솔직히 이런 설정일 줄은 생각도 못해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거기에 여배우 미나미 상이 등장하여 노래하기 시작. 이건 본인이 직접 노래하는 게 아니라 밴드석에서 부르는 노래의 립씽크이다. 실제 노래의 주인공이 궁금해지는 시점에 뒤쪽의 붉은 장막이 걷히고 진주인공 미야케 준 밴드가 등장한다. 디바 Lisa Papineau가 엄청난 포스로 노래를 하는 것과 동시에 밴드석은 통째로 전진하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은 미야케 준의 음악을 전제로 댄스와 약간의 연극이 가미된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미야케 준의 음악이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심하게 말하면 미야케 준의 음악만으로 이미 완벽해서 다른 것(특히 SF 설정 같은 연극적인 요소)는 군더더기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딱히 미야케 준의 팬도 아니며 그의 음악은 작년 보이체크 무렵부터 조금씩 듣게 되었을 뿐, 솔직히 내 음악 취향과는 거리가 있어서 자주 찾게 되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걸 라이브로 들으니까 정말 소름이 돋는 거다. 이건 미야케 준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작품이고 팬이 아니더라도 보고 나면 팬이 된다. 그의 음악에 발레리나와 댄서가 춤을 추는 걸 보고 있으면 참 현실감이 없어진다. 눈 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은 흡사 뮤직비디오? 아니, 라이브 연주니까 콘서트라고 해야 할까? 귀가 호강하는 화려한 연주가 끝나고 배우가 일본어로 대사를 치는데 그렇게 위화감이 느껴질 수가 없더라. 그래서 생각하건대, 이건 밴드와 가수가 쉬는 타임이구나. 왜 콘서트에도 토크 타임이 있잖은가. 계속 연주하면 힘드니까 그 시간에 쉬는 거지. 흥미는 가지만 그게 메인은 아닌 거. 얼른 다음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게 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작품을 보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나를 일본까지 걸음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남자 야마모토 코지가 텀을 두지 않는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어떤 무대를 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인가. 한 달 사이에 엔터테이먼트계의 정점에 있는 작품과 실험적인 예술 무대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이 배우의 무시무시한 스펙트럼은 그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주연인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이 작품을 골랐는데, 주연인 듯 주연 아닌 주연 같은 너~ 이 작품에서 야마모토 코지는 그야말로「힘을 감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이야기가 코지군으로 시작되어 코지군으로 마무리된다는 의미에서는 주연이 맞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공유하는? 극장에 남자 Y (여기서 Y는 야마모토 코지의 Y)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지막까지 무대에 남아있는 사람도 Y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메인은 어디까지나 음악이다. 실제로 그는 극의 대부분을 관객과 같은 시선으로 무대를 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춤을 추는 댄서들을 보고 있거나 한다. 심지어 2층 발코니석에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거긴 또 언제 올라간거야 ㅋㅋㅋ 

코지군이 얼마나 존재감을 지우고 있느냐면 내 자리가 통로석이었는데 내 옆을 몇 번이고 지나갔다. 그런데 인기척도 없어서 이미 지나간 뒷모습만 실컷 봤다는 거. 물론 그는 뒷모습도 멋지다. 남들보다 허리가 한 뼘은 위에 있는 듯한 훤칠한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극장의 지배인(역할명은 중년 남성 S)로 나오는 시라이 상도 종종 내 옆을 지나갔는데 반대로 그는 매번 발소리를 내줘서 금방 알 수 있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내 옆자리, 그러니까 나는 사이드 블럭 통로석이었고 중앙 블럭 통로석이 비어있어서 저 꿀자리를 누가 예매해두고 안 온거야. 괜시리 안타까웠는데 극중에 시라이 상이 와서 앉길래 깜짝 놀랐다. 그곳에 앉아서 남자 Y가 노래하는 걸 계속 보고 있더라. 이때 시라이 상은 연출가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역할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여간 이 무대는 영상화 된다면 필히 멀티 앵글로 찍어야 한다. 내 눈이 다섯개였으면 했으니까. 무대에서 모리야마 카이지 상이 춤을 추고 있으면 그 뒤에서 쩌는 리사 언니가 노래하고 정신차리고 보면 미야케 상이 트럼펫을 잡고 있고 앗 하는 사이에 코지군이 내 옆을 지나간다. 


코지군의 외국어 노래는 설마 이 남자가 이것도 잘하려고 하는 마음에 조금 긴장하며 봤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이제 그만 야마모토 코지가 뭐든지 잘한다는 걸 알 때도 됐는데 새로운 능력이 추가될 때마다 새삼 놀라고 만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미야케 준의 앨범에도 다수 참여한 가수 Lisa Papineau는 말할 것도 없고 여배우 미나미 상은 아버지가 프랑스인인 혼혈이다. 그 사이에서 도쿄 신주쿠 태생 순수 일본인 야마모토 코지가 포르투갈어, 프랑스어로 노래를 하는 걸 보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 거지. 평생 프랑스하곤 연이 없던 남자가 불과 한 달의 연습, (한 달간 노래 연습만 한 것도 아니다. 평소대로 무대 연습을 하면서) 일주일 공연 만에 이 정도 실력까지 끌어올렸다는 건 칭찬해주지 않을 수 없다. 외국어 발음을 위해 평소 쓰지 않는 얼굴 근육을 쓰는 거 같았다. 창법도 처음 들어보는 창법이었고 코지군에게 익숙한 팬에게도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외국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더 놀라운 건 내가 하루 차이로 본 2번의 공연 중 나중에 본 공연이 월등히 능숙했다는 거. 하루 사이에도 이렇게 성장하는구나. 코지군은 1막에서 포르투갈어 노래「EXIBIDA」, 2막에서 프랑스어(?) 노래「Outros Escuros」와「Le mec dans un train」총 3곡을 부른다. 다 좋았는데 특히「Outros Escuros」를 부를 때는 감미로움에 녹아버리는 줄 알았네.「Le mec dans un train」은 저음이 매력적이었다. (미야케 준 앨범에 수록된 원곡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참고)

게다가 밴드에 속한 전문 가수를 제외하고 노래하는 배우는 코지군 뿐인데 (다른 배우들은 립씽크를 한다.) 미야케 준의 음악을 스스로 체현한다는 의미에서도 대단한 거 같다. 또,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연기까지 더해지니까 좋은 거 아니겠어. 앞서 코지군이 거의 연기를 안 한다고 했지만 노래를 부를 때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이 감염되어 새로운 인물이 되기 때문에 노래의 느낌도 각기 달랐다. 다른 배우들도 몇 명의 인물을 연기하지만 그때마다 가발을 쓰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차이를 두는데 코지군은 그러한 외향의 변화가 전혀 없이 오로지 표정으로만 다른 인물을 연기해내는 것이 과연 연기 내공을 느끼게 했다. 마지막은 시를 읊으면서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리는데 솔직히 그 시의 어느 부분이 눈물 포인트가 되는지 몰랐지만;; 그 순간의 집중력도 대단했다.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고 있을 때는 또 어쩜 그렇게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한 인물을 쭈욱 연기한다기보다 여러 인물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이번 역할이 평소보다 더 연기력을 요구하는 역일지도 모른다. 


여배우진도 좋았다. 미나미 상은 혼혈답게 큼직큼직한 이목구비가 마음에 들었고 짧은 머리 가발도 썩 잘어울려서 나중에 긴 머리로 등장하는 프랑스 여성과 확실히 구별되는 점도 좋았다. (남자 Y가 극장에 떠도는 어떤 남자의 기억에 감염되어 미나미 상을 사랑한다며 백허그하는 장면이 있는데 미치게 부러웠다고 한다) 에나미 쿄코 상은 등장하는 것만으로 아우라가 있었다. 두번째로 본 날은 망원경으로 표정을 자세히 봤다가 엄청난 포스에 기가 죽어 슬며시 망원경을 내려놓았을 정도다. 다만 일본인 특유의 연기라고 할까, 버릇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연기할 때보다 시를 읊을 때가 더 좋았다. 목소리만으로 극장의 공기가 그녀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아, 나 이분 어디서 봤나 했더니 핀토코나에 나왔었구나. 그 드라마는 정말 몇 명의 배우가 재능을 낭비한거야 ㅋㅋㅋ


이번 무대의 안무를 담당하고 출연도 한 댄서 모리야마 카이지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불타는 금발 머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극을 보면서 나름대로 별명을 지어줬는데 처음에는 엘프님이었으나 뒤로 갈수록 흡혈귀가 되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창백한 게 볼수록 흡혈귀 같더라. 머리카락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코지군이 최대한 자신을 절제했다면 이분은 반대로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할까. 몸으로 마음껏 표현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2막에서 남자 Y가 암전 속에서 라이트를 들고 마네킹 사이에서 헤매는 씬이 있다. 그때 이분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확 나타나서 두 사람이 라이트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손에 든 라이트에 연결된 전깃줄이 꼬이지 않는 동선이 훌륭하다. 또, 코지군이 노래할 때 옆에서 깃털을 들고 춤추는 모습도 강렬했다. 이분의 경력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스무살 이후에 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해오는 게 대부분인데 조금 의외였다. 


그리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작품의 연출가이자 중년 남성 S를 연기한 시라이 아키라. 시라이 상은 극장의 지배인(?) 설정으로 출연하는데 아무래도 연출과 겸하다보니 등장 횟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나올 때마다 임팩트가 엄청나다. 무려 발레복을 입고 나올 줄이야 ㅋㅋㅋ 시라이 상, 그건 반칙이잖아요. 발레를 하며 확성기를 들고「A Dream Is A Wish Your Heart Makes」부르는데 사실 이 곡은 코지군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었던 노래지만 시라이 상이 만들어내는 장면이 슬프고도 아름다워서 기억에 남는다. 아, 다리를 절게 된 것도 그때문인가. 눈여겨볼 만한 연출이 몇 군데나 있었는데 경대(앞뒷면이 전부 거울)을 사용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리거나 발레리나들이 감정을 대변하듯이 춤을 추는 것도 멋지고 특히 엔딩이 좋았다. 먼저 발레리나가 하나둘 퇴장하고 배우들이 퇴장하고 가수가 퇴장하고 밴드도 한 명씩 퇴장하면서 음악에서 악기가 하나씩 빠진다. 그러면서 점점 단조로운 멜로디가 되어가고 마지막으로 미야케 준마저 퇴장하자 고요해진 극장에 혼자 남은 코지군이 관객석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전부 Y가 보는, 아니 관객이 보는 꿈이 아니었을까? 보고 나면 여운이 남아서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다. 아마 처음 봤던 날 기립 박수가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대신 막공날은 끝없이 이어지는 기립박수에 화답하여 앵콜곡도 들을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막공 인사가 재미있었던 게 일단 코지군이 주연이니까 주위에서 자꾸 가운데에 세우려고 하는데 코지군은 사양하며 미야케 상이나 시라이 상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거다. 그럼 또 시라이 상이 다시 코지군을 가운데로 밀고 코지군은 또 미야케 상을 밀고 그런 모습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마지막엔 스태프들까지 전부 나와 박수를 받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작품은 인터미션에도 배우들이 무대 위를 서성이거나 무언가를 하기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휴식 15분이라는 자막이 뜨지 않으면 인터미션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극중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언제 누가 무대 위에 나타날지 몰라서 자리를 지키며 그 모습을 관찰하고 싶었지만 통로석에 앉은 탓에 어쩔 수 없이 로비에 나가있는 걸 택했다. 이왕 나온 거 화장실도 이용하고 돌아오는 길에 복도에서 야마모토 코지를 딱 마주치고 깜짝 놀랐잖아!!!!!!!!!!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이야!!!!!!!! 진짜 코앞에서 보고 깜짝 놀라서 돌아봤는데 다시 봐도 야마모토 코지 맞다. 아, 겁나 잘생겼어ㅠㅠㅠㅠㅠㅠㅠ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함께 있던 시라이 상에게 "이 극장은 어떤 곳인가요?" 라는 둥의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남자 Y가 극장 지배인 S에게 극장 안내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작품에 등장하는 극장이 바로 이 극장이라는 설정..... 같은데 아무렴 어떠냐. 코지군이 가는 곳마다 여성 관객들이 웅성웅성 하며 급기야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데 여자들을 줄줄이 매달고 다니는 모습이 평소의 인기남 야마코지 같아서 웃겼다. 극중 남자 Y는 기억에 농락당하는 순진한 청년이었는데 이러면 설정이 어긋나잖아 ㅋㅋㅋ  그렇게 얼마간 있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가길래 (이날 내가 있던 곳은 2층이었다) 더는 눈으로도 쫓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랜덤 이벤트 같은 건가 보다. 내가 처음 본 날은 이런 거 없었거든. 아무리 다른 층에 있었더라도 코지군이 로비에 나타나면 주변이 난리가 나니 몰랐을 리가 없다.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날은 극장 까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주문하거나 소파에 앉아있는 관객에게 "나 저 남자, 본 적 있어" 라고 하거나 애드립으로 이것저것 했던 모양이다. 이런 걸 기획하는 시라이 상은 참 재미있는 분이라고 생각했고, 거리낌없이 가까이에서 관객을 대하는 코지군의 도량도 느낄 수 있었다. 


특기할만한 사항이라면 이 작품은 남성 관객이 많다는 것. 아무래도 이런 연극 문화 소비층은 여성이 많은데 내 옆, 앞, 뒤, 건너 옆, 앞 전부 중년의 남자였다. 미야케 준의 팬이려나? 그러고보니 작년 보이체크도 남성 관객이 많았는데 시라이 연출 무대가 남성 관객에게 먹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설마 마성의 야마모토 코지 덕분일까? ㅋㅋㅋ 아, 나 연예인도 봤다. 당시에는 낯이 익은데 이름이 떠오르질 않아서 답답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까 후키코시 미츠루 씨였구나. 화면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남다른 아우라가 있었다. 대각선 앞자리에 앉아있어서 나도 모르게 자주 시선이 갔네. 



극장도 작품의 분위기를 대변하듯 환상적이었다. 입구부터 알록달록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영상이 춤을 춘다. 극장 전체가 살아움직이는 느낌이다. 시라이 연출은 '내가 이 극장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이 극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과연 그 소신에 걸맞은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만족감이 높아서 공연이 끝나고 시라이 연출의 다음 작품 티켓을 파는 것을 보고 기세로 살 뻔했다. 하지만 이제 꿈에서 깨어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걸음을 돌렸지만 그 극장에서 본 환상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