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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TTB

뮤지컬 틱틱붐 - 신성록, 윤공주, 이주광

by 캇짱 2010. 10. 22.


▲ 첫공에서도 보지 못한 수잔의 그린 드레스가 요기잉네?

뮤지컬 틱,틱...붐!
10월 19일(화) PM 8:00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C구역 4열

신성록, 윤공주, 이주광



공연이 시작되는 지점(시작점)은 어느 순간부터라고 봐야할까. 객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순간?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순간? 모든 조명이 꺼지는 암전의 순간? 배우가 무대에 처음 등장한 순간? 아니면 첫 대사를 말하는 순간? 첫 넘버를 부르는 순간? 그 기준점은 제각각이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배우는 자기 자신이 아닌 무대 위의 인물이 되어있어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대본상의- 첫 대사를 입에 담기 전 애드리브로 뭘하든지 간에, 배우가 관객 앞에 등장했으면 그때부터 공연은 시작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겠지. 

이번 틱틱붐은 원형극장이라는 무대 특성상, 배우가 무대 위에 바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객석의 통로를 통해 등장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비단 이 공연 뿐만이 아니라 지금껏 이러한 형식을 취하는 공연을 몇 번인가 접했었고, 그때마다 통로를 지나는 찰나의 순간조차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는 배우들을 만났다. 긴장된 객석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관객을 제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그들이 그냥 흘려보낼 리 없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대 위의 인물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성록씨의 첫 등장 컨셉은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꺄-꺄- 거리는 관객들의 악수 요청에 응하는 정도로는 부족했나, 스스로 객석에 뛰어들고 엉겨붙고 쓰다듬고 한 마디로 팬서비스 작렬하는 그에게서 존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새삼 연예인 신성록의 인기를 실감한 것 말고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간이었어. 그런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열어 '불안과 초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걸까.

지연 관객과 더불어 연예인 신성록이 흐려놓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머릿 속에서 Reset 하고 나니, 비로소 존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신성록씨의 음색은 작품과 잘 어우러졌다. 연기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노래면에서 강필석씨는 이 작품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음색이나 창법 면에서 이질감을 받았다) 더군다나 이번 마이클 역의 이주광씨가 일반적인 마이클 역의 음색 -흑인 특유의 저음이 살아있는 목소리- 이 아니다보니 강필석씨와 함께 노래하면 서로 겹치는 느낌을 받는 것도 한몫한다. 두 사람의 음색이 비슷하다보니 화음을 넣어 노래하더라도 저음을 받쳐주는 사람이 없고, 분명 존 다음에 마이클이 노래를 하고 있는데도 계속 한 사람이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까. 이 조합으로는 넘버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면에서 신성록씨와의 조합은 어느 정도 내 귀를 만족시켜 주었다. 이주광씨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신성록씨의 음색 덕분에 저음부가 살아나면서 비로소 화음이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이클 역이 원캐스트다보니 무조건 이주광씨로 봐야만 하는 현 상황에서 신성록씨와의 조합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최선의 선택인지 모른다. 아니, 그나마 나은-이라고 해두자.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 라고 쓴 것은 그때문이다. 배우 본연의 음색에 기댄 중저음은 제법 훌륭할지 몰라도 고음부는 매끄럽지 못 했다. 특히 고음을 올릴 때 불필요한 동작들은 될 수 있으면 자제했으면 하는데.. 그건 비단 이 공연에서만의 문제는 아니고.

그가 연기하는 존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경계선을 잘 짚어낸 듯 보였다. 굳이 따진다면 무거운 쪽보다는 가벼운 쪽에 가까웠지만 거슬릴 정도로 과하지는 않았다.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본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어 있어, 이대로만 가준다면 제법 괜찮은 존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내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주길 바랐건만, 가주질 않아! 감정이 전혀 나아가질 않는다. 무슨 노래를 부르건 무슨 일이 생기건 그의 감정은 쭈욱 일직선으로, 처음 있었던 그 경계선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수잔과의 이별도, 마이클의 아픈 고백도, 그에겐 그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에 불과했다. 감정의 쓰나미가 몰아쳐야 할 순간에 그의 가슴엔 아주 작은, 약간의 파문이 일은 것이 고작이다. 친구가 죽어간다는데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그대는 진정한 이 시대의 차도남! 
WHY 전후는 틱틱붐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관객들의 집중력이 흐려진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은 배우의 역량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모든 원인을 그에게서 찾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있던 영상마저 사라지자 참으로 무심해진 연출 탓도 크고- 온전히 배우가 끌고 가야 하는 장면을 연기하기에 그는 아직 부족하다 느껴졌다. 하필 'Louder Than Words' 에서 가사를 날려먹은 것도 마이너스 요인이고. 이건 실수지만 뼈아프다.  
확실히 전작만은 못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로미오앤줄리엣」이후「The Story of My Life」에서 근 1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많이도 성장해 있었다.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어느 쪽인가 하면 나도 우려하는 쪽에 가까웠고) 그것이 배우 본인에게 해가 되지만은 않았구나- 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틱틱붐을 소화해낼 만큼 성장하지는 않았구나. 좀 더 경험을 쌓고 좀 더 준비를 해서 무대에 올랐더라면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건 그렇고, 이 날 공연의 최대 문제는 윤공주씨였다. 연출이고 뭐고 지적할 때가 아니야. 아 정말 내가 이런 표현까지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한 마디로 짜증이 났다. 공연 끝나자마자 같이 본 지인과 거의 동시에 나온 소리가 "윤공주씨, 도대체 왜 저래?" 였다. 오버도 이런 오버가 있을 수 없네. 첫공 봤을 때도 좀 과하다고 느꼈었지만 첫공임을 감안해 굳이 문제삼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연 중반이잖아. 이제 자리를 잡았을 줄 알았지. 안정되어 있기는커녕 극단으로 치달은 연기에 한숨만 나왔다. 수잔이고, 로자고, 카렛사고, 마이클의 직장 상사고, 어쩜 연기가 하나같이 똑같은 톤이야. 개그로 가야할 캐릭터가 있고 아닌 캐릭터가 있는 거지. 모두 다 듣기 싫은 하이톤으로 앵앵대면 어쩌자는 거지? 시종일관 과장된 연기를 하다 'See Her Smile' 에서 급 감정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택시 탈거야" 라는 대사에 관객들이 웃어대는 것만 봐도 그녀가 연기의 방향성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래는 기교만 잔뜩 묻어나와 진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이번 틱틱붐이 깊이가 없고 가벼운 것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윤공주씨에게 지워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그래도 이주광씨 덕분에 이 작품을 다시 본 보람이 있었다. 사실 첫공 때 보고 제일 기대 안 했던 배우였는데 훌륭한 반전이었다. 못 본 사이 마이클의 옷을 제 몸에 꼭 맞춰입은 그는 그 곳에 있는 어느 배우보다도 돋보였다. 이 날 공연에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틱틱붐이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와닿은 순간은 오직 이주광씨가 '진짜 인생'을 노래하던 순간이었다. 아픔과 그늘이 느껴지던 마이클 역 이외에도 여성성이 묻어나는 마이클의 직장 동료 연기도 좋았다. (아마 그의 헤드윅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첫공 때 너무 가벼운 거 아니냐며 질타했던 손드하임의 목소리도 이제는 제법 진중함이 묻어나온다. 이쯤 되니 불어난 그의 몸도 역할연구의 일환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전히 병을 고백하는 장면은 임팩트 없이 지나갔지만 연출이 그러한 이상 배우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겠지. '그 고백' 을 할 때 조금 연기에 텀을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 한마디로 단번에 화제의 중심이 존에게서 마이클로 넘어와야 하니까.

확실히 첫공 보다는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줄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연출이 많이 정리되었달까. 이걸 정리라고 해야 할지, 그나마 있던 것도 없애니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안한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애초에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는 것도 문제고. 이렇게 대거 삭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어수선하고 가벼운 느낌까지는 지우지 못하더라. 'No More'에서 객석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건 언제봐도 무리수다. 배우들이 시간 안에 그곳을 빠져나오느라 (지나가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는 거야!) 힘겨워보인다. 존 앞에 놓인 건반은 폼인가? 도대체 존은 작곡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건반과 친하지 않다. 본인 입으로 건반을 천천히 눌러본다고 했으면 제발 누르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왜 눈 앞에 피아노를 뻔히 두고 생일축하곡은 밴드석까지 올라가 연주하는 걸까. 그 행위는 고작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면 족한 것인가. 존이 언제나 작곡을 하던 자신의 방, 자신의 피아노, 처음 생일축하곡을 연주하기를 거부했던 그 피아노가 아니어도 괜찮았던 걸까. 이 모든 게 그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인가..

서른 살 생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생일이라는 절반의 조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공연을 보았다. 아마 다음 재연을 할 때 즈음엔 나도 서른이 되어 있겠지. 서른 살 생일에 이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일거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이 작품이 정말 좋으니까.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한편, 두렵다. 조나단처럼 나도 서른이 되기 전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