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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TTB

뮤지컬 틱틱붐 - 딱 포스터 만큼의 공연

by 캇짱 2010. 10. 1.

우선, 충격과 공포의 포스터부터 다시 한번 봐주고 시작.



뮤지컬 틱,틱...붐!

9월 30일(목) PM 8:00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B구역 4열

강필석, 윤공주, 이주광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포스터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 심정 그대로, 공연을 보았다.
기존의 틱틱붐과는 차별화 된 무대를 선보인다고, 기존의 틱틱붐은 잊으라고 하더라만.
이럴려고 그런거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 억지로라도 잊어야만 한다. 기존의 틱틱붐을?
아니,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틱틱붐이라는 사실을.
지난 아르코 대극장에서의 틱틱붐도 별로 칭찬해줄만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건 틱틱붐이었다고! 조나단 라슨의 틱틱붐이었다고!

이번 틱틱붐, 포스터를 봤을 때부터 이건 아니다 싶었다.
첫공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치 내가 극중 존이라도 된 것 마냥 째깍, 째깍.. 초조함과 두려움에 오죽하면 꿈까지 꿨겠나.
하지만 걱정하는 한편, 기대도 했었다. 꿈은 반대라고 믿으며 이번 공연 대박의 징조라고 자신을 추스리며,
이렇게 걱정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우스워질 정도로 멋진 반전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째서 슬픈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나.

그저 대학로 소극장의 흔하디 흔한,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물을 보고 온 느낌이다.
그렇다고 대학로 소극장 작품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본디 이 작품은 보다 메세지성이 강하고 큰 그림이 그려지는 작품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없었다. 라슨이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 렌트에의 기나긴 여정의 시작...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라슨의 '라' 자도 느껴지지 않는 공연이었다.

마침 강필석씨도 나오고, 김종욱 찾기 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듯.
틱틱붐이 아니라 개그붐인가?
넘버들은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고 덕분에 그렇지 않은 넘버들에도 그 가벼운 기운이 영향을 미친다.
깊이가 없고 알맹이가 빠진 느낌. 틱틱붐의 겉만 후르륵 핥은 느낌이랄까.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너무 가벼워졌다.
분명 존은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고,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대사가 가지는 힘은 여느 공연만 못하다. 간절함이라든가, 절박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필석씨의 존에 대해선 조금 기대를 하고 갔는데, 김종욱 찾기에 등장하는 강필석스러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김종욱 찾기를 볼 때는 그 연기가 참 좋았더랬는데 그 연기를 틱틱붐에서 보게 되는 건 아니올시다.
의외로 연기 폭이 좁은 배우인가?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배우인데, 최근작들은 별로 와닿질 않는다.
뭔가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쉬워..
그 듣기 좋았던 노래조차 락 뮤지컬임을 의식해 창법을 바꾼 모양인지, 자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았고 어색했다.

이건 뭐 조울증도 아니고, 존의 감정 기복이 너무 크다.
밝은 넘버에선 지나치게 장난끼 있고 우울한 넘버에선 급진지해져 눈물을 쏟아낸다.
넘버별로 따로 떼어놓고 보면 나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한 편의 극으로 보자면, 감정이 툭툭 끊어지는데다 어딘가 과장되어 보인다.
덕분에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별로 서른 살을 두려워하고 초조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말야.
방금 전까지 신나서 웃고 떠들고 하다가, 아, 이 넘버는 슬프게 부르는 넘버지. 라며 급하게 감정을 짜내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밝은 넘버를 부르는 와중에도 서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초조함이나 두려움이
저 밑바닥 언저리에 느껴지는, 그런 존을 만나고 싶었어ㅠㅠ

윤공주씨는 1인 다역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했으나, 메인 역할인 수잔일 때나 다른 역일 때나 쏟아내는 에너지가 비슷해서,
수잔이라는 중요한 배역도 그저 스쳐가는 여타의 배역 정도의 느낌을 받게 한다는 점이 아쉽다.
오히려 에이전트 로자를 연기할 때 더 돋보였고 말이지. 노래도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를 못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아는 윤공주씨는 이보다 더 잘하는 배우라는 거!)

이주광씨는 존의 죽마고우 라는 느낌은 잘 표현했을지 몰라도
마이클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더군. 
마이클은 존보다 먼저 서른을 맞이한 친구로, 보다 어른스러운 느낌의 묵직함이 배어나오는 역할이다. 
자기 일만 생각하기 바쁜 존을 대신해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라 생각하는데, 존이랑 같이 들떠있네?
덕분에 자신의 병을 고백하는 장면도 임팩트 없이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아직 첫공이니까, 배우들의 연기는 얼마든지 나아질 여지가 있다고 본다.
아쉬운 느낌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이것이 이 배우들이 가진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을 뿐더러,
반대로 말해, 가능성이 엿보였던 부분도 충분히 있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또 다른 존인 신성록씨의 연기도 기대되는 바이다.  

문제는 연출.
이번 연출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표현하는 추상적인 컨셉이 특징인 모양.
처음부터 끝까지 의상의 변화가 없고 소도구의 활용도 전혀 없다.
식당에서 일하는 존은 앞치마 한번을 두르지 않으며, 수잔은 그린 드레스를 입지 않는다.
초코바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으며,
수잔과 마이클이 존에게 선물하는 오선지도, 구찌 벨트도 없다. 
배우들이 연신 마셔대는 물통만 전화기 대용으로 사용될 뿐이다. 
 
덕분에 장면 및 시간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 기승전결도 없고, 밋밋하다.
존의 감정이 정점에 이르기까지의 전개가 확실한 작품인데, 정점까지는 가보지도 못한다.
추상적이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추상성을 고집하더니,
정작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에선 불필요한 영상을 삽입해 몰입을 방해하더군.
슈퍼비아의 메인솔로곡인 'Come to Your Senses' 를 부를 때는
실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배우와 영상 속 배우의 입모양이 맞지 않아 방해만 되었다.
존이 마이클의 병을 알게 된 후 방황하는 장면에서 쏘아지는 영상도 정말 군더더기.

또한, 관객과 하나되는 친숙한 컨셉을 추구한 모양인지 중간중간 박수를 유도하거나, 배우가 객석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통로도 아니고 객석과 객석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가뜩이나 좁은데 관객들은 배우들 지나가게 가방 치우느라 바쁘고, 잘못하면 발 밟겠더라;;
원형극장의 관객 대부분을 만족시키기 위한 동선도 어지러울 따름이고.

원작과 다른 부분도 눈에 띈다.
내가 원작 대본을 전부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결정적인 장면이나 대사는 기억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이번 틱틱붐에선 그 결정적인 부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결정적으로 원작에서의 존은 손드하임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부재중 메세지로 녹음되는 손드하임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 존의 생일회장에 울려퍼지는 게 정석.
그래서 더 극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틱틱붐에선 엉뚱하게도 존이 전화를 받더라.
그 위대하고 존경하는 천재 작곡가님과 직접 통화를 하는 존이라니..
어디 떨려서 수화기를 들고 있을 수나 있나요;; 원작을 수정해서 더 좋았으면 괜찮은데 아니니까 하는 말.  
이주광씨가 연기한 손드하임의 목소리는 너무 가볍고 장난스러워
감히 이름도 말 못할 그 분-이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고, 그 상황 자체가 우스워지더라.
이어지는 'Louder Than Words' 가 이렇게 와닿지 않는 건 또 처음일세.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아닌, 그냥 끝나는 분위기로 좋은 게 좋은 거지-하는 'Louder Than Words' 였다)

무엇보다 생일 케이크가 등장하지 않는, 존이 서른 개의 촛불을 직접 불어 끄지 않는 틱틱붐은
틱틱붐이라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