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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아나스타샤

뮤지컬 아나스타샤 관극 리포트 : 각자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

by 캇짱 2020. 5. 24.


유려한 음악에 휩싸여 무대에 나타난 것은 왕궁의 작은 침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막내딸로 마리아 황태후가 가장 아끼는 황녀 아나스타샤는 파리로 떠나는 할머니에게서 작은 오르골을 건네받습니다."이걸 들으면 내 깊은 사랑을 떠올리렴"이라고 미소 짓는 황태후와 오르골의 음색에 맞춰 "Once Upon A December"를 부르는 아나스타샤.



10년 후, 17세가 된 그녀가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궁전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끝내 대폭발이. 혁명이 일어나 황제 일가가 남김없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파리 체류 중인 마리아 황태후는 쓰러져 웁니다.



한층 더 시간은 지나 제정 러시아의 자취가 사라진 거리에서는 고아로서 혼란의 시대를 살아 온 청년 드미트리가 사기꾼 브래드와 함께 현상금 사냥을 계획. "홀로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도는 황녀 아나스타샤를 황태후가 찾고있다고 듣고 적당한 소녀를 아나스타샤로 위장해 큰 돈을 챙기려는 것입니다.


출국허가증을 찾아 나타난 기억을 상실한 소녀 아냐를 선발한 두 사람은 곧바로 레슨을 시작. "누군가가 파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라는 막연한 기억에 이끌려 열심히 자아차지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드미트리는 어느새 빠져들어갑니다. 발레단의 단원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열차로 파리를 향하는 세 사람이지만, 아나스타샤 생존설을 용인할 수 없는 정부는 장군 글렙을 파견. 간신히 다다른 파리에서 세 사람은 황태후와 면회를 하기에 이르지만...


시대의 거센 파도 속에서 전부를 잃은 히로인이 강한 의지로 정체성을 회복,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뎌 갈 때까지를 그린 이야기. 큰 틀로서는 역사의 if(만약)을 모티브로 한 "동화"이면서도 테렌스 맥널리의 각본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있으면서도 희망과 신념을 계속 가지고 있던 아냐를 비롯하여 각 캐릭터의 "살아내는 힘"을 생생하게 묘사. 스테판 플라하티의 친숙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과 함께 예기치 않게 "지금"의 관객에게 힘차게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상연 전에는 에런 라인의 영상의 아름다움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것만이 돌출하지는 않고 비주얼 요소의 일부로서 효과적으로 기능. 특히 아나스타샤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행을 떠나는 대목에서는 철틀로 표현한 열차가 출발하면 배후의 배경이 순식간에 전원으로, 광대한 대지로 바뀌며 아나스타샤들이 품는 해방감, 여행의 고양감이 극장 공간 전체로 퍼집니다.



각본으로 그려진 인물상에 각자의 개성을 더해 부풀려서 이야기 세계에 설득력을 안겨주는 출연자들도 큰 볼거리. 이날의 아냐 역 키노시타 하루카 상은 더러워진 단벌 옷을 입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난폭한 몸짓을 하면서도 우연한 순간에 나고난 기품을 엿볼 수 있는 인물을 호연. 달콤한 노랫 소리에도 항상 "심지"가 통하고 있어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히로인을 조형하고 있습니다.



이 날의 드미트리 역 우츠미 아키요시 상은 준민한 움직임과 물정에 익숙한 모습으로 혼란한 시대의 서바이버를 체현. 드미트리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 "My Petersburg(나의 페테르부르크)"에서의 힘찬 가창도 상쾌해 많은 관객에게 "신성의 등장"이라는 강한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요.


드미트리의 단짝으로 사기꾼 브래드를 이날 연기한 것은 이시카와 젠 상. 전형적인 소악당이라고 하기보다는 사고가 유연하고 낙관적인 인텔리라는 분위기에 서바이버의 굉장함이 엿보입니다. 드미트리와의 대화도 템포 좋은 세대를 초월한 "좋은 파트너" 모습.



그런 그의 "전 여친?" "전 호구?"로 마리아 황태후를 섬기는 백작부인 릴리는 고향 상실이라는 아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포 귀족의 모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확 기분전환을 하는 활력의 소유자. 이 날 연기한 호리우치 케이코 상은 이 넘버 ("과거의 나라")에서의 출중한 탄력으로 이야기에 새롭게 규모를 더해 2막의 충실함에 크게 공헌하고 있습니다.



노상에서 만난 아냐에게 마음이 끌리면서도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파리까지 뒤쫓아 가는 정부 고관 글렙. 실은 그의 아버지는 황제 일가를 총살한 경비병으로 그 일을 부끄러워하면서 돌아가셨다는 아버지에게 반발,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지만 아냐의 한결같은 삶의 방식에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역할입니다. 이 날 연기한 야마모토 코지 상은 히어로익한 목소리의 질감이 단순한 악역이 아닌 이 역에 잘 맞아 냉혹한 말투 속에서도 어딘가 "따뜻한 피"가. 종반 아냐와의 대결 장면은 스릴이 넘쳐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무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메인 캐스트에서는 유일한 싱글 캐스트인 아사미 레이 상이 연기하는 마리아 황태후. 개막 전에는 완급자재의 대사로 어린 아나스타샤 뿐만 아니라 관객을 금세 꿈을 꾸는 듯하게 만들고 비극이 일어고나서는 깊은 슬픔 때문에 완고한 모습이 아냐가 넘어야 할 벽의 높이를 강조합니다. 파리에서 마침내 아냐를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될 수 없어요""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알아요?""어느 것이 마지막 작별이 될 지 우리는 몰라요"...라고 아냐를 질책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묻듯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선명. 거기에 아냐가 어떻게 대답하고 자신의 생각을 부딪쳐가는가. 볼거리가 많은 본 작품 속에서도 가장 큰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겠죠.



라스트씬을 감싸는 것은 단조에서 장조로 변한 "Once Upon A December".동유럽풍 멜로디는 장조가 되어도 근심을 남기고 본 작품의 베이스가 너무나 슬픈 사실임을 상기시키는데 이번에는 더 나아가 "내일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는 세상 물정과 겹쳐 불안과 상실감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가는 캐릭터들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진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인류가 이 사태를 뛰어넘어 일본에서 다시 본 작품이 상연될 때에는 또 새로운 메시지가 보일까요. 그날이 머지않아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취재·글=마츠시마 마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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