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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말한다

연극 해변의 카프카

by 캇짱 2015. 11. 28.


해변의 카프카

11월 27일(금) PM 7:30 

엘ㅈㅣㅇㅏ트센ㅌㅓ 1층 5열 중앙 어딘가


내가 이걸 언제 예매해뒀더라.. 잊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알림 문자가 와서 그제서야 마음이 급해졌다. 

보기 전에 원작을 읽어두고 싶었는데..

여하튼 작년에 인상 깊게 본 무사시 연출의 니나가와 유키오 작품이기도 하고

오노레 나폴레옹 때 갑작스러운 대역을 부탁받고는

아이 도시락 싸주고 가도 되냐고 했다는 미야자와 리에의 배짱(+코지군과의 3일 밤샘 투혼!)이 궁금해서 보러갔다.

그런데 미야자와 리에가 1막에선 5분도 채 안 나오는 거 같아서 당황. 

부쵸...보다는 개인적으론 초연 캐스트인 하세가와 히로키가 보고 싶었고.

그런데 가서 보니 1년 만에 봐서 반가운 스즈키 안도 나오고

얼마 전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역이었던 카키자와 하야토도 나오더라.

이 배우 나올 때마다 자꾸 노래할 거 같아서 움찔했다 ㅋㅋㅋ


원작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가서 시작하기 전에 대충 프로그램북을 훑었지만 읽어봐도 뭔 내용인지...

그렇게 극장에 들어섰는데 시작부터 엄청난 아크릴 세트에 압도당했다.

숲 속 세트 이동은 어쩐지 무사시가 생각나기도 하고 중간중간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깜짝 놀랄 만한 연출이 있었다.

자막 없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배우들 딕션도 제각각이고 비일상적인 단어도 많아서 열심히 곁눈질하며 봤다.


공연 내용은 난해했지만 다 보고 나면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

미야자와 리에는 진짜 말랐고 인형 같더라. 인형 같이 예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무기질적인 느낌이었음. 

아크릴 상자 안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라이브는 아닌 거 같았다)

연기력 그런 것보다도 저 조그만 곳에 몸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신기했다 ㅋㅋ

내가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싱크로율이 높은 배역이 아니었을까?


부쵸... 후지키 나오히토는... 솔직히 얼굴을 기대하고 갔는데 ㅋㅋ 

보자마자 감탄이 나올 만큼 잘생기진 않았고 (아니, 잘생겼다. 잘생겼는데! 

막 엄청나게 멋져! 빛이 나! 날 가져요! 느낌이 아니고 그냥 거기에 담담하게 잘생김이 존재한다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아우라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딱 화면에서 보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연기도 딱 그 정도였다. 뭐, 대단한 연기력을 드러낼 만한 비중도 역할도 아니다 보니

무대 배우로서 장점은 느낄 수 없었고 그냥 실물을 봤다는 것 정도에 의의를 둔다.


카프카 역의 후루하타 니노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 그도 그럴 것이 카프카 역이 인생 첫 연기라는 듯.

저 어린 배우에게 저런 연기를 시켜도 멘탈 다이죠부? 라고 걱정될 정도로 소년 역에 잘 어울렸는데

찾아보니 91년생이길래 미성년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기 자체는... 이건 내가 니나가와 연출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연출가 작품에 출연하는 젊은 배우들은 자기 색깔, 자기 의지가 거의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연출가의 손길이 느껴진다는 거.

연출이 애초에 그런 無의 상태를 원하는 거 같고 작품에 있어서도 결코 나쁘지는 않지만 배우 자체로서의 역량은 의문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니나가와 연출도 그의 연극적으로 숙련되지 않고 미완성인 부분이 좋았다고 하네.


이번 공연에선 니나가와 연출 작품의 단골인 요시다 코타로 상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나카타 상 역에 기바 카츠미 상이 그 아쉬움을 채워주었다.

난해한 작품인데도 중심을 잃지 않고 극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는 감정선이 돋보였다. 

그 밖에 동물 역할을 하는 배우들도 예리하게 특징을 잘 잡아 연기하는 게 인상에 남았다.


커튼콜 때 퇴장하다가 멈춰서서 다시 후루하타 군을 인사시키는 미야자와 리에 상이 귀여웠다. 

이런 모습조차 매력적인 배우. 솔직히 공연보다 커튼콜 때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취향으로 따지자면 작년 무사시를 훨씬 재미있게 봤지만 그때와 닮은 듯 다른 재기발랄한 연출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극장을 나오며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어릴 때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에 마음이 흔들렸으면서

어른이 되자 '이젠 어린애가 아니니까' 라며 모르는 것도 이해하는 척을 한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