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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코지/뮤지컬 TL5Y

뮤지컬「The Last Five Years」2010 in 오사카 (3)

by 캇짱 2010. 5. 4.

초연에서 삼연까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어왔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의상이다. 뭐니뭐니 해도 비주얼적인 면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 앞서 이 작품의 일본 초연은 5년의 시간을 오로지 옷 한벌로 버텨왔다고 지적했었다. 가뜩이나 시간축이 엇갈리는 마당에 의상마저 변화가 없다보니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명색이 '더 라스트 5 이어즈' 라는 작품의 타이틀을 민망하게 했었지. 그러한 지적을 수용하여 재연 때부터는 의상에 신경을 써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삼연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남녀주인공은 각각 서너벌의 의상을 갈아입으며, 같은 의상이라도 자켓을 벗거나 앞치마를 두르는 등 차이를 보인다.


출처 : 프로그램 중 Visual of L5Y

제이미는 첫 등장부터 결혼식 이전까지 빨간 체크 무늬 셔츠에 청바지 차림, 세번째 넘버인 슈무엘 송을 부를 때는 그 위에 벨벳 코트를 덧입는다. 결혼식 때는 순백의 수트를 입고 사랑을 맹세하며 이후에는 쓰리피스의 곤색 수트를 넥타이까지 완벽하게 갖춰입는다. 완벽하게 갖춰입은 모습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켓을 벗은 베스트 차림이 더 숨 막히더라. 흰색이든 곤색이든 수트 입은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정말 아쉽다. 그건 정말 직접 봐야하는데ㅠㅠ


출처 : 프로그램 중 Visual of L5Y

캐시의 첫 의상은 곤색 트렌치 코트, 두번째 넘버부터는 (무대 의상이라는 가사를 의식한) 빨간 드레스, 결혼식에는 역시나 순백의 드레스를 입는데 이 드레스는 일반적인 신부 의상이라기 보다는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머리에 하얀 털모자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선 의상 담당이 너무 힘줬군-이라는 생각도;; 이후에는 온몸으로 건강함을 발산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이미의 의상 중에서 체크 무늬 셔츠에 특히 주목해보았다. 수트는 이미 재연 때부터 선보였던 의상이지만 체크 무늬 셔츠는 이번 삼연에서 처음 등장한 의상이다. 프로그램의 의상 컨셉 설명을 참고로 하자면, 아메리카 교외 청년 이미지로 유대인계의 착실한 느낌도 살리면서 장난꾸러기 같은 분위기도 추구했다고. 코지군이 팔 다리가 길어서 유명브랜드의 옷인데도 맞는 사이즈 찾기가 힘들었다는 의상 담당의 웃지 못할 고생담도 실려있다. 사실 내가 이 체크 무늬 셔츠에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 2009년 한국 재연판의 제이미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딘가 한국판을 참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재연판에선 없었던 의상이 2009년 한국판이 상연되고 2010년 삼연판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뭔가 있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 않는가. 깊이 따지고 들면 체크 무늬 색깔이나 패턴도 다르고, 일본 관객들에게는 '틱,틱,붐!' 의 존을 떠올리게 하는 의상이었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한국 공연을 봤으면 봤다고 솔직하게 말했던 전작 헤드윅의 경우를 생각해볼 때,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겠지. 하지만 우연히도 한국판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던 점이 반가웠다고 해두자.

제이미는 이 셔츠를 극 중반까지 입고 나오는데 이 의상의 용도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후에는 캐시가 트레이닝복 위에 그의 셔츠를 걸쳐입고 노래 연습을 하거나 한다. 의상의 역할이 단순히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시간을 나타내는 힌트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제이미의 셔츠를 입고 있는 캐시를 보면 자연스럽게 극 초반의 제이미가 오버랩 되며 그 제이미와 이 캐시는 같은 시간을 살고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서로의 옷을 바꿔입기도 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한 때는 이별의 안타까움을 극대화 하는 효과도 가져다준다.



이처럼 스즈카츠 연출은 시간축이 엇갈리는 작품의 구성을 최대한 이용하는데, 그 특징이 이 사진 한장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 봐서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른 시공간에 있는 두 사람이라는 것에 이 연출의 재미가 있다.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시공간에서 정반대의 감정을 내보이고 있는 두 사람.. 이 작품만이 가지는 구성상의 묘미를 영리하게 드러낸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이 작품은 남녀 두 배우가 번갈아 등장하며 일인극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일본판은 두 배우가 함께 무대에 나와있는 시간이 많다. 이것은 초연에서부터 종종 써먹던 연출 기법인데 당시에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었다. 연출가의 머릿 속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지만 완벽히 와닿지는 않았던 불친절한 연출이었달까. 하지만 이번 삼연에서는 그 모든 그림이 일단 보면 이해가 가도록 친절하게 펼쳐진다.

자신의 등장순서(자신의 넘버)가 아닌데도 무대에 나와있는 배우는 상대배우의 보조를 한다.
캐시의 넘버 'See I'm Smiling' 를 예로 들자면,



<제이미 퇴장>

그렇게
빨리 돌아가는거야?
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 괜찮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오늘 밤은 함께 있는 거지.

<제이미 재등장>


이런 식으로 노래 가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행위를 보임으로써 감정이입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코지군이 참 바쁘기도 한 게, 다른 시공간 속의 제이미를 연기(책상 위의 원고를 만지작거리거나 어딘가에 전화를 하거나)함과 동시에 캐시의 노래도 귀기울여 듣고 있다가 타이밍 좋게 움직여줘야 한다. 물론 캐시도 제이미의 연기에 도움을 줄 때가 있지만 'If I Didn't Believe In You' 에서 가만히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게 고작이다. 대부분의 경우 제이미가 캐시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뮤지컬에 첫 도전하는 여배우의 연기를 도와주는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A Part of That' 에서 자신만의 소설 속 세상에 정신이 나가 있으면서도 시계추처럼 흔드는 캐시의 빗자루질을 요리조리 피하는 제이미의 민첩함은 필견이다.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후기.
(4)에서는 본격적으로 코지 제이미 이야기를 하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