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생 처음 합성이란 것도 해보고... 허접하지만 처음 한 것 치고 뭐.. 나름 만족.
..이 아니자나!!! 지인에게 프로그램 넘겨받는 게 늦어서 스펠링을 이제서야 확인했는데 'V' 가 아니라 'B' 로 시작하더라;;
무슨 문구를 적을까 고민하다 마침 '평화의 전도사' 라고 쓰는 도중에 (완성본에선 그 문구는 빠짐)
갑자기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후다닥 끄긴 했지만, 이미 다 보신 모양.
나가시면서 하는 말씀이 " 전도사라니, 너 무슨 종교에 빠졌냐? ㅋㅋㅋ"
빠지긴 빠졌지요. 건명교 라고.......☞☜
ㅡ ㅡ ㅡ
이미 캐스트별로 두번(21일, 24일)을 보고, 한번의 공연(29일)을 더 예매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현시점에,
도저히 벤볼리오 찬양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서 글을 쓴다.
(라면서 자연스럽게 블로그도 재개;;; 악, 몰라. 부끄러워. 저도 이런 식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결국 저를 움직이는 건 팬질인가요-_-;;;;;;;;;;)
처음,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국어판 공연이 상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이 작품에 목을 매게 될 줄은 몰랐다. 정확히는 작품에 목 맨다기 보다는 벤볼리오에 목 매고 있는 거지만;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워낙에 유명한 고전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테고,
이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 뮤지컬은 국내에도 꽤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아쉽게도 내한팀의 공연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DVD로는 접할 수 있었고, 그 인기를 실감했다.
보통 이러한 작품이 라이센스화 되면 기대도 되는 한편, 걱정도 되는데..
특히나 이 작품은 라이센스 과정에서 들려오는 불필요한 잡음들로 인해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나로써는
기대 보다는 걱정 쪽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린 것이 사실이다. 아마 완소 배우인 이건명씨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 무시무시한 가격에 미련없이 등을 돌렸을지도 모를 일이고.
이왕 보는 거 알짜배기로 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더블 캐스트 조합을 맞췄다.
더블 캐스트에 대한 감상은 나중에 쓰기로 하고, 일단 닥치고 승리의 원캐스트 벤볼리오 역의
이건명씨 찬양부터 하도록 하자.
앞서 밝혔듯이, 나는 이 배우를 좋아한다.
작년 여름, 더위 따위 아랑 곳 없는 이건명씨의 상쾌함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이전에도 그의 무대를 본 적은 있었지만, 화려한 경력이 말해주는 베테랑 배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 때, 그의 연기력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저 공연을 즐기는 관객의 하나일 뿐인 내가 반평생을 무대 위에서 살아온 배우의 실력을 함부로 정의하고
감히 논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그의 시원시원한 창법은 정말 좋아하지만
그 어딘가 틀에 박힌 듯한 연기에는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에 와선 매우 미안한 이야기지만 같은 역을 연기했던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배우
(이제 와서 무엇을 숨기리오. 바다 건너 코지씨;)와 비교해서 그의 연기에 더 혹독한 평을 내렸던 것 같다.
사실 그 역은 건명씨 아닌 누구라도 그 배우와 비교하면 성에 안찼을 터.
매번 말하는 거지만, 그 강렬했던 갬블러가 아니었다면 건명씨에게 호감은 가질 지언정 팬이 되지는 않았겠지..
이건명씨의 연기에 가장 매너리즘을 느꼈던 건 작년의 '제너두'. 뭐, 이 작품은 그의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새삼 말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팬심으로 한번은 보고야 말았던 작품이다.
당시, 나 아니어도 이 작품을 혹평하는 사람들은 많았기에, 굳이 주연 배우의 팬인 나까지 나서서 작품을 깎아내릴 것은
없겠다 싶어 후기 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처음 입에 올리는 건데, 제너두에서의 그는 썩 좋진 않았다.
나는 제너두의 '쏘니 말론' 에게서 틱틱붐의 '존' 과 갬블러의 '갬블러' 를 보았다. 갬블러의 이건명씨는 정말 좋아하지만
전혀 다른 작품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배우가 꼭 연기변신을 해야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전작의 향기가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것은 배우로서 가장 지양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언제나처럼 그는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실망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발전은 없었다. 그는 제자리 걸음을 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고, 그 숨은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주어야 한다.
서른을 훌쩍 넘은 배우가 치고 올라오는 수많은 후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뒤쳐지지 않고 있다.
어디 뒤쳐지지 않는 것 뿐이랴. 당당하게 경쟁을 해서 주역이란 타이틀을 거머쥔다.
그는 제법 훌륭한 배우다.
하지만 나는 그 앞에 붙는 수식어로 '제법' 이 아닌 '굉장히'를 바라는 욕심 많은 팬이다.
지금 이렇게 냉정한 시선으로 글을 써내려가고 있긴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안 좋은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까도 되는데(;;) 다른 사람이 까는 건 또 못 보는 삐뚤어진 팬의 심보랄까..
그가 흠잡을 데 없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훌륭한 노래 > 적당한 수준의 연기' 라는 공식이
'훌륭한 노래 = 뛰어난 연기' 로 이꼴(=)이 되게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 뮤지컬이란 장르를 참 쉽게 보고 덤비는 부류가 많은데, '노래 = 연기' 라는 공식이 성립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고들 그러는게지.. 노래 따로, 연기 따로 잘 하는 가수와 배우는 얼마든지 있지만
노래에 감정이 묻어나면서 연기 속에 노래가 들려오는 배우는 정말 흔치 않다.
그런 부분에 있어 배우 자신도 고민을 한 것인지, 이건명씨의 이후의 행보는 주목할 만 했다.
주로 대극장 무대에 서왔던 과거와 달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란 소극장 작품으로 관객 앞에 선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곧바로 이건명씨의 손으로 날아들어온 작품이 아니란 것은 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찌됐든지 간에, 건명씨가 평소 욕심 내는 작품 중에 하나였고
오퍼가 왔을 때 흔쾌히 출연을 결정한 것에 나는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이 작품은 분명 이 배우의 경력에 깊은 족적을 남길 테지..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단 두 사람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이 소극장 작품에서 그는 놀라운 발전을 보여준다.
아니, 단순히 '발전'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 안에는 이러한 섬세한 작품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었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이끌어내주는 작품과 배역을 만나지 못 했었다고나 할까.
이어지는 다음 작품으로, 조금은 생소한 장르인 과학 연극 '산소' 를 택한 것도
그가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드디어!
이건명의, 이건명에 의한, 이건명을 위한
벤볼리오와 조우하게 되나니!!!
아아, 나는 이 벤볼리오 역이 배우 이건명의 완성형 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앞으로 더더더더 발전할 배우지만,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 배우의 조건
'훌륭한 노래 = 뛰어난 연기' 공식이 성립되는, '굉장히' 훌륭한 배우가 되었다는 말이다.
벤볼리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주인공 로미오의 사촌동생으로 등장하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의 흐릿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솔직히 로미오에게 사촌동생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이제 와서 잘 기억나지도 않고;;)
그런데 이게 뮤지컬로 넘어오면서,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랐다는 설정과 더불어
원작에서는 하인이 담당했던, 로미오에게 '줄리엣의 죽음' 을 전달하는 임무까지 떠안게 되는데..
그 인생의 굴곡은 "어떻게 말하나" 라는 벤볼리오 솔로 넘버에 절절하게 녹아있다.
다른 캐스트들과 안정된 조화를 이루며 극을 이끄는 그의 노래 실력에는 새삼 놀랄 것도 없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의 연기..아니, 이건 연기가 아니다. 그는 벤볼리오 그 자체였다.
신기하게도 그의 벤볼리오를 보고 있으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벤볼리오 라는 인물의 '현재' 뿐 만이 아니라
'과거', 그리고 '미래' 까지도 전부 그려진다. 그야말로 그는 벤볼리오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관객이 보는 현재의 벤볼리오는 늘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이지만,
이는 그의 어두운 과거로부터 비롯된 반동이다. 고아로 거리를 헤매며 자란 그는
겨우 손에 넣은 지금의 이 행복을 어떻게든 이어가야 한다는 말 못할 불안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2막에서 더욱 벤볼리오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1막에서 티발트에게 (강아지 부르듯) 쯧쯧쯧 하거나 숙모님의 웃음소리를 흉내내거나
여인들과 신나게 춤추고, 땅따먹기 하고, 유모의 머리로 장난치거나 무릎에 앉히며 놀려대고
로미오와 유모의 대화를 엿들으며 아닌 척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벤볼리오도 좋다)
나는 '모두 수근대' 에서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불안을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티발트가 '오늘이야' 말로 로미오를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고 벤볼리오가 쪼르르 달려가 머큐시오를 불러오는데
(자기 혼자는 못 당해내겠고 힘쎈 횽아한테 이르러 간 느낌;;) 급기야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으로 사태가 급변하자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그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머큐시오의 죽음을 지켜보며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어린 시절 캐플릿가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이건 순전히 내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의 벤볼리오는 절로 이런 망상을 가능하게 한다구!!)
숨을 헐떡대는 머큐시오가 자신의 어깨로 쓰러져오자 순식간에 절망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표정도,
로미오가 떨어뜨린 칼을 재빨리 주워 캐플릿가의 청년과 대치할 때의,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오로지 친구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잔뜩 힘이 들어간 표정도, 그 어느 것 하나 과하지 않다.
그렇게 티발트와 머큐시오가 죽고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있던 벤볼리오는 캐플릿경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고통을 가슴 속에 꾹꾹 눌러담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곧 그 가장이 풀리면서 급격히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로미오에게 줄리엣의 죽음을 알리는 잔인한 역할까지 떠맡은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보였다.
손까지 덜덜 떠는데 완전.. T^T 그것은 '여기서 손을 떨어야지' 라고 의식하고 행하는 연기가 아니라
정말 연기에 몰입해서 자기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느낌인지라 관객으로서 진짜 대단한 걸 봤다는 느낌이다.
"줄리엣이.. 죽었어.." 할 때의 표정은 또 어찌나 절절한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고통스러운 그 한마디를 토해내는데..아아, 이건 정말이지 봐야하는데.. 말로 표현하려니 너무 힘들다.
친구 없이 홀로 남겨진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그가,
본의 아니게 머큐시오의 죽음에도, 로미오의 죽음에도 영향을 미치고 말았으니..
그의 미래를 생각하면 극장을 나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전감대(全感帶)적 감상을 가능하게 해 준 이건명씨에게 무한 감사와 애정을 바치며..
내 안의 이건명씨 최고의 작품도 오늘 부로 바뀌었음을 선언!
벌써부터 내년 상연 예정(이건명씨 주연)의 모 공연이 기대되누나.
무대를 말한다